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덤으로 얻어 온 내 마음속의 국경일- 김혜연(시인)

  • 기사입력 : 2012-06-01 01:00:00
  •   


  • 장 구경 갔다. 도심 가운데서 열리지만 오일장답게 제법 소소한 구경거리 제공한다. 기차만 겨우 지나가는 자리 비워두고 나앉은 화분의 봄꽃들은 시장 온 주부의 발길을 끌고 있다.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바쁘게 돌아 나오는 길, 시장 귀퉁이에서 마늘 다듬고 계신 할머니 한 분, 보자마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커다란 종이카네이션 한 송이가 쪼그라진 할머니 가슴 모두 점령하고 있다. 누군가 열심히 만들어 달아 주었을 저 서툰 종이카네이션, 어릴 적 우리 역시도 엄마 가슴에 꼭꼭 눌러 달아주지 않았던가. 할머니 옆에 앉아 푸성귀를 사면서 묻는 말 끝나기도 전 손자 놈이 와 달아주고 갔다고 빠진 이 내보이며 대답하는 할머니 얼굴 세상 가득 넘치도록 행복해 보인다.

    고맙다는 말은 참 아름답다. 누군가가 나에게 보여준 진정성에 마음 담아 전하는 인사말, 하지만 세상 모든 대상에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말 해보면 안 될까. 나무야 강아 꽃아 모두 제자리 있어줘서 고맙다. 오늘 처음 만난 할머니도 오래전부터 만나온 이웃어른처럼 고맙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코 지나치는 가정의 달 오월을 시장바닥 가득 환하게 빛나는 붉은 종이카네이션으로 일깨워주셨네요라고. 그래, 이처럼 소중한 인사말을 우리 부모님께는 몇 번이나 하고 살아 왔나. 부모님 고맙습니다. 아무리 많이 해도 모자라는 말이 아니던가.

    그렇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란 누구도 그 무엇도 대신하지 못하는 안전한 가족들만의 공동 휴식처다. 가족 모두 함께 노력하여 귀하게 지켜가야 할 곳이라는 점도 틀림없다. 너무도 당연해 모르는 이 없는 정답임에도 캠페인까지 내걸어 해마다 강조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 우리 스스로 부끄럽게 길들여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가정폭력과 함께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가지만 이 또한 무신경해지고 익숙해져 간다. 내 일 아니다 간과하고 넘어가기엔 갈수록 잔인하고 만만치 않은 사건들임에도, 핵가족 사회가 만든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재빨리 기억 속에서 외면당하고 만다. 성급한 이기심이 팽배해져 있는 사회일수록 가정에서 해야 할 역할은 크다. 한 가정의 부모로서 또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근본적 도리와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지 늦기 전 되짚어보는 오월이 되자.

    오래전 어머니날에서부터 시작되어 명칭이 바뀐 어버이날은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국경일에 속한다. 몇 번을 강조한들 값으로 대신할 무엇이 없는 부모님 은혜, 높고 고귀한 사랑은 깨닫다 보면 이미 늦었거나 마음먹고 공경하며 모셔도 모두 갚지 못한다. 바뀔 수 없는 이 불변의 진리는 갈수록 복잡하고 수상해져가는 시국에서야말로 더욱 필요하고 소중한 가치관이 아닐까.

    한 사회를 안정되게 이끌어 가는 데 있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의 밑바탕은 가정이다. 모 정당에서 어버이날을 국경일로 정하겠다 떠든 적 있다. 정치에 문외한이라 그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했는지, 이를 앞세워 어떤 기득권 차지하려 했는지는 관심 없다.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과연 교체된 세대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역할이 주어져 사회를 위해 쓰일 수 있을까, 혹은 불필요한 역할로 전락되어 가정과 사회 울타리 밖으로 물러나 잊히는 지경까지 되지 않을까. 고민과 반성 중이다. 물론 어버이날이 국경일로 지정된다 하여 민감한 사회적 문제가 당장 해결될 리 없다. 다만 긍정적으로 파생될 행복 바이러스를 꿈꾸는 기대감과 함께, 우연히 시장에서 덤으로 얻어 온 내 마음속 국경일은, 종이카네이션 자랑스럽게 매단 할머니 웃음 뒤 자식들이 부모님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무한한 사랑을 만난 바로 오늘이다.

    김혜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