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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플러그만 뽑아도 4000억원 줄인다- 김호용(한국전기연구원장)

  • 기사입력 : 2012-07-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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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가정에 하마가 산다. 아프리카에 사는 하마가 아니다. 바로 셋톱박스 등 대기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가전기기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력을 많이 쓰니 돈먹어 치우는 하마에 다름 아니다.

    대기전력이란 가전기기가 꺼져 있는 동안에 소비하는 전력을 가리킨다. 우리는 흔히 사용하지 않거나 외출을 할 때 가전제품의 스위치를 끈다. 하지만 스위치가 꺼져 있다고 해도 플러그가 꽂혀 있으면 미세한 전력이 소비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전기연구원 연구팀은 경남 지역을 포함해 전국 권역별로 105개 가구를 샅샅이 뒤져 2500개 가까운 가전기기의 대기전력을 측정했다. 이번 조사 결과 각 집안에 평균 24대의 가전기기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전력 조사 결과는 놀랍다. 각 가전기기 가운데 대기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셋톱박스인 것으로 나타났다. 12와트의 대기전력을 소모했다. 대부분 24시간 콘센트에 플러그가 꽂혀 있는 TV의 대기전력이 1.3와트에 불과한 것에 비해 TV와 연결해 사용하는 셋톱박스가 거의 10배나 되는 대기전력을 소비한 것이다. 아이들 책상 위에 놓인 인버터 스탠드 등을 밝혔을 때 대략 20와트를 소비하는 것을 감안하면 셋톱박스 2대 정도를 꺼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탠드 등 하나를 계속 켜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기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그 밖에도 인터넷 모뎀, 거실용 에어컨, 보일러가 거의 6와트 대기전력을 소비했고, 오디오, 홈시어터, 비디오는 5와트, 유무선 공유기, DVD 등은 약 4와트를 소비했다. 휴대폰을 충전할 때 5와트 가량을 소비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 기기들을 작동하지 않고 플러그를 꽂아 놓은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전력을 소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전력이 제로인 헤어 드라이어, 믹서기, 다리미 같은 몇몇 예외적인 제품군이 있지만 일단 플러그를 가진 가전기기는 모두 대기전력을 소모한다고 보면 된다.

    대기전력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도 만만찮다. 대기전력으로 빠져나가는 전력은 일년 동안 총 209킬로와트시(kWh) 정도 된다. 전력요금으로 환산하면 연간 2만5000원 정도에 달하는 양이다. 전기요금은 누진제 체계이므로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가정일수록 같은 대기전력량이더라도 그 경제적 부담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더 큰 문제다. 전국 가정에서 사용하는 대기전력을 1년 동안 모아보면 3470기가와트시(GWh)나 된다. 이는 50만 킬로와트 화력발전소가 289일간 쉬지 않고 발전해야 충당할 수 있는 양이다. 전력요금으로는 연간 약 4200억 원이나 되는 에너지가 각 가정에서 줄줄 새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가정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기업체 사무실, 공장, 공공기관 등에서 낭비되는 대기전력까지 합산하면 활용되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지는 전기에너지의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 겨울에 이어 여름철 전력수급에 대한 위기감으로 온 나라가 대책 마련에 부심한 상황이다. 요즘처럼 전력 사정이 어려울 때는 대기전력을 아끼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전국 가정의 모든 가전기기가 동작하지 않고 플러그만 꽂혀 있어도 50만 킬로와트급(500MW) 화력발전소 1기 이상의 전력을 소모하는 셈이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분야가 대기전력일 것이다. 당장 쓰지 않는 가전기기의 플러그를 뽑거나, 대기전력 차단 멀티탭을 사용하고, 특히 가전제품을 고를 때, 에너지절약 마크 제품을 구입하는 등 생활 속 실천을 통해 대기전력을 줄인다면, 가정경제에도 나라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대기전력을 전혀 소모하지 않는 가전기기들을 개발해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이는 것은 향후 우리 과학자들의 몫이다.

    김호용(한국전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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