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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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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철학의 빈곤- 김 참(시인)

  • 기사입력 : 2012-12-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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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동네 국밥집에 가서 뼈다귀해장국을 시켜놓고 식당 한쪽에 있는 신문을 본다. 1면부터 계속해서 대선 관련 기사들이다. 사진만 대충 보고 넘긴다.

    그러다 한쪽 면에 시선이 고정된다. 지구종말에 관한 기사다. 눈길이 간다. 마야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고 해서 지구가 종말을 맞을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고 그 소문 때문에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풍경을 기사화해 놓은 것이다.

    남미의 고대문명이 수학과 천문학 분야에서 놀랄 만큼 뛰어난 면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가 정말 멸망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뜨거운 국물을 떠먹는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화분에 물을 주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칼럼에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책무더기를 뒤져 관련된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며 다른 사람들이 쓴 칼럼을 읽어보기도 하지만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신문에서 봤던 지구종말 관련 기사를 검색해본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사재기가 성행하고 있으며 지구종말을 믿는 사람이 20%가 넘는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NASA에서 지구종말이 올 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 동영상을 공개했다는 기사도 읽으며 실소를 짓기도 한다. 나사에서는 왜 하지 않아도 되는 동영상 공개를 하는 것일까?

    종말론에 관한 연구서를 읽어 보면 지구종말에 관한 설은 오래전부터 종종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연구서는 종말에 대한 가설들이 한 번도 적중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9년에도 지구종말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시는 어머니 생각도 난다. 어머니는 1999년에 휴거가 일어나며, 믿는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시를 쓴다는 평을 받았던 나도 지구종말을 믿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제법 심각했다. 어머니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1999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직도 열심히 교회에 나가신다.

    종말론에 대한 이론이나 가설들은 대체로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서구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시간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것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태초와 종말을 신봉하는 그런 세계관을 가진 문명에서 탄생한 철학은 아주 빈약한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 왔다.

    그리고 그런 토양에서 발화한 철학자들의 생각이나 말을 아무 비판 없이 인용하는 사람이나 문학과 예술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 같은 것은 잘 몰라도 한평생 잘 살아온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서구의 내로라할 철학자들보다 더 훌륭한 철학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문학과 예술은 그 자체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또 무슨 철학을 더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배가 고프다. 또 밥때가 됐나 보다.

    김 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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