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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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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역- 노향림(시인)

  • 기사입력 : 2012-12-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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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다 낡은 환상만 내다놓은 나무 의자들

    공허가 주인공처럼 앉아 있다.

    그 발치엔 먼 데서 온 파도의 시린 발자국들

    햇살 아래 쏟아낸 낱말들이

    실연처럼 쌓이고

    우우우 모래바람 우는 소리.

    먼저 도착한 누군가 휩쓸고 갔나 보다.

    바닷새들이 그들만의 기호로

    모래알마다에 발자국들 암호처럼 숨겨놓고 난다.

    낯선 기호의 문장들이 일파만파 책장처럼

    파도 소리로 펄럭이면

    일몰이 연신 그 기호를 시뻘겋게 염색한다.



    -시집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2012 실천문학사)


    ☞ 지나간 시간들이 생각나는 12월도 꼬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역’이라는 이름에는 설렘도 있고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습니다. 그것도 바닷가에 있는‘정동진역’은 누구를 사랑하든지 미워하든지 간에,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낡은 환상만 내다놓은 나무 의자들’에서 시인은 과거가 되어버린 풍경들을 생각하면서 감정의 촉수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역사(歷史)의 기관차는 시시때때로 떠나버렸지만 ‘파도의 시린 발자국들’은 멍든 상처들을 게워내고 있습니다. 첫사랑이든지 설렘이든지 누구에게나 자신의 ‘암호’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있겠지요.

    ‘일몰’은 시간의 그림자를 끌고 당신의 ‘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괜스레 감정의 통점을 찔린 연말입니다. 박우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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