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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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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과 손등- 박서영(시인)

  • 기사입력 : 2013-01-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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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방 옆자리 노인이 아가씨 손금을 봐 준다

    중년의 아가씨

    부끄럽게 두 손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올리는데

    손등에 파란 혈관이 굵직굵직하다

    툭 튀어나온 혈관이 아버지에게 밥을 배달한다

    엄마를 위해 두 손을 모은 혈관은 늘 터질듯 긴장상태다

    오빠를 위해 돈을 번 혈관은 이제 콧노래를 부른다

    가난한 가족을 가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끝없이 손을 갖다 바치는 것

    다방 아가씨 손등엔

    물푸레나무 가지들이 그녀의 재산처럼 뻗어있다

    농부와 어부와 노동자와 예술가

    자연의 체온이 빚어 낸 아름다운 손

    손금의 운명이 진화하면 손등의 풍경이 된다

    저기 보라,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 바르고

    착하게 웃고 있는 주름살투성이 미스 김을,

    - ‘현대시학’ 2012년 2월호



    ☞ 이 작품은 ‘주름투성이 미스 김’의 ‘손금과 손등’에서 시적 상상력이 발원된다.

    ‘가난한 가족을 가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끝없이 손을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감성에 가슴이 짠해진다. ‘손등엔 물푸레나무 가지들이 그녀의 재산처럼 뻗어있다’ 아가씨의 장단지는 붓고, 손등엔 ‘툭 튀어나온 혈관’이 ‘긴장’되어 있다. 시인은 ‘손금의 운명이 진화하면 손등의 풍경이 된다’ 말하고 있다. 이 표현은 이 시의 문학적 풍격을 높여주는 빼어난 수사다. 겨울밤에 맛보는 잘 익은 동치미 맛이다. 언제, 친구들과 함께 ‘다방’으로 달려가 ‘미스 김’의 훈훈함을 맛보고 싶다.박우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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