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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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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 피는 꽃-양봉일지 12- 이종만(시인)

  • 기사입력 : 2013-01-3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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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 치는 사람은 한겨울에도

    아카시아 꽃 만발하는 꿈을 꾼다

    꿈 속에 아카시아 꽃 지천이었는데

    비바람 몰아쳐 죄다 떨어지는 꿈 꾸고 나면

    한겨울에도 식은땀이 흐른다

    함박눈 내리면 지는 꽃잎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시집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 2006. 문학세계사


    ☞ 올겨울엔, 산과 들판에 인간의 길도 이따금 지워질 만큼 함박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종만 시인은 ‘벌 치는 사람’입니다. 양봉업자들은 대개 겨울에는 남해안에서 벌통을 손질하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강원도까지 꽃을 찾아 올라가 벌통과 생활하고 있습니다. 벌과 부대끼면서 터득한 벌의 질서와 조직에 시인은 감동을 받습니다.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 감동이 시인의 상상력으로 나타납니다.

    ‘한겨울에도/아카시아 꽃 만발하는 꿈을 꾼다’ ‘꿈’에서조차 나타날 정도로 ‘아카시아 꽃’은 양봉을 생업으로 하는 시인에겐 소중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꽃’은 ‘비바람 몰아쳐 죄다 떨어’집니다. 시인은 꽃에 울고 꽃에 웃습니다. 꽃의 질에 따라 꿀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에 ‘꽃’이 ‘떨어지는 꿈 꾸고 나면/ 한겨울에도 식은땀이 흐른다’라고 말합니다. ‘함박눈’이 ‘꽃’으로 보일 정도로 불안한 시인의 자의식이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시인이 꿀벌과 함께 세상을 살아오면서 몸에 기록한 흔적들을 적은 겁니다. 로얄젤리처럼 톡 쏘는 맛이 나는 시입니다.

    박우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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