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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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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기부 실천 기업가 정영식 범한산업 대표

‘남 배려하는 삶’이 좌우명 사회 기부로 실천 중이죠

  • 기사입력 : 2013-02-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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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식 범한산업 대표이사가 집무실에서 슈프렝어가 쓴 ‘위대한 기업의 조건’의 한 구절을 읽은 후 ‘신뢰가 기업 경영을 위한 핵심 자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1984년 해양대 졸업 후 엔지니어링사 취업
    선박 공기압축기 국산화 각오로 1990년 창업
    나로우주센터에 납품하는 일류기업으로 성장

    아름다운 가게·장애인복지관 등 곳곳 기부
    연간 2억원 범위 내 장학금·후원금 기탁

    대통령배 3연패한 경주마 ‘당대불패’ 마주로
    상금 2억원 기부하며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회사 차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시행
    “지역기업으로서 수익 사회환원 책임의식”


    ‘충분한 종잣돈도 없이 왕성한 혈기 하나만 믿고 창업, 20여 년 만에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강소기업을 일구었다. 문득 사회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회사 수익과 개인 소득의 일정 부분을 장학금 등으로 기부하기 시작, 아너소사이티 멤버가 됐다.’

    과감한 도전을 통해 독보적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이루고, 그 과실을 사회에 환원하는 한 사업가의 스토리가 ‘편한 일’만 찾는 요즘 세태에 울림을 주고 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마산자유무역지역 제2공구에 있는 공기압축기 분야 세계일류기업 (주)범한산업 정영식(53) 대표이사.

    지난 1984년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박용(舶用)기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창업을 결심하기 전 선박 관련 엔지니어링 회사에 4년여 재직했다. ‘청년’ 정영식은 선박에 들어가는 공기압축기가 전량 수입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기필코 내 손으로 국산화하고야 말겠다’는 당찬 각오로 1990년도에 창업전선에 뛰어든다.

    이때 그의 나이는 31세. 원기가 왕성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연장(年壯)’이자, 경제적으로 부모의 품에서 막 벗어나 스스로 서게 되는 ‘이립(而立)’의 나이였다.


    ◆‘이립’의 나이에 창업 대야망을 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자본력이 충분할 리 없었다. 더구나 도전하는 영역이 국산화 기술이 축적돼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안정된 회사생활을 접는 데 대한 걱정과 만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산업입국의 기치를 높이 든 대한민국이 이후 20년이 넘도록 기술자립을 못하는 데 대해 기술학도로서 일종의 시대적 책임감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진 것 없었던 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큰 계기가 됐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창업지원법이 제정돼 자본력이 없는 사람도 정부 지원을 받아 회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일종의 벤처캐피털 격인 창업투자회사가 설립돼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생산성본부가 개설한 창업자 양성과정에 등록해 준비를 착실하게 했습니다. 사업계획서를 직접 만들어 경남창투사에 노크를 해 7억 원 정도의 종잣돈을 융통할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이니 지금의 화폐가치로 보면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산업이 꽃피기 직전 단계로 선박용 공기압축기는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한국의 기계산업이 국제경쟁에서 이기려면 장기적으로 기술자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국내 기업체에 될 수 있으면 국산부품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선박을 발주한 선사들은 검증이 안 된 한국산 공기압축기를 장착하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항해 중에 고장이 날 경우, 망망대해에서 수리를 위해 항구로 되돌아와야 해 기회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범한산업은 세계 최고 공기압축기 제품을 구해서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소위 ‘역설계 방식’인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했습니다.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시장진입 장벽이 만만찮았습니다. 선박제조 주문을 하는 곳은 덴마크 등 유럽선주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창업 3~4년밖에 안 된 ‘초보회사’의 제품을 쓰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 국가 계획조선, 즉 국적선을 건조하게 될 경우 정책자금 대출로 국산제품을 장착하도록 했고, 아울러 수입가격 급등에 대비해 부품도입선 다변화도 권장했다. 이즈음 범한산업은 상공부를 통해 기술력 검증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국적선사인 한진해운과 동원산업·대림수산 등 원양어선에 범한산업이 생산한 공기압축기가 속속 탑재되면서 실적이 차츰 쌓였다. 여기다 정부가 발주하는 해경과 해군함정에도 범한산업이 생산한 공기압축기 납품이 늘었다.


    ◆나로우주센터에도 납품하는 ‘강소기업’ 되다

    정 사장의 집무실 한편에는 언제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려낼 수 있는 ‘설계대’가 놓여 있다. 야간형 생활습관을 가졌기에 밤 작업이 가능하도록 조명등도 달았다. 도면 위에는 갖가지 쇠자와 삼각자, 각도기, 크고 작은 원을 그릴 수 있는 도형판 등이 놓여 있어 수시로 작업이 가능하다.

    “저는 아침 9시 전후에 일어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해를 잘 못하겠지만 체질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아니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전의 절반은 버리고 오후에 업무에 집중하지요.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를 때면 언제라도 설계할 수 있도록 집무실에 설계대를 설치해 놓고 있습니다.”

    범한산업은 정 사장의 치열성을 바탕으로 공기압축기 분야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현재 국내 조선업체에 공기압축기를 납품하고 있으며, 특히 연간 시장규모가 약 100억 원대인 초고압 공기압축기 국내시장의 100%를 점유, 독점하고 있다.

    정부로부터는 함정용 고압압축기를 ‘기계류 부품소재개발 대상품목’으로 고시받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복합사이클형으로 저진동, 저소음, 내충격성 등을 공인받아 지식경제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 인증을 받았다. 고압 압축기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의 쾌거였다.

    아울러 과학기술부 ‘국산신기술인증(KT마크)’ 산업자원부 ‘우수품질인증(E마크)’ 특허청 ‘특허등록’ 등으로 창업 20년 기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산업재산권을 보유한 기술력 중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결과, 범한산업은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세계 100대 지속 가능 경영기업’ 중 10위에 뽑힌 세계 1위 압축기, 점보드릴, 조립용 공구 생산 다국적기업인 아트라스콥코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이 회사 브랜드로 세계시장에 고압압축기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위성발사에 성공한 나로우주센터에도 초고압 공기압축기를 납품했다.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위성을 쏘아올리기 전에 주변설비를 통해 발사 시뮬레이션을 되풀이하는데 가격이 매우 비싼 실제 주입연료를 쓸 수 없어 추진로켓과 똑같은 추력을 내는 초고압 공기압축기로 대신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부에 관심을 두다

    정 사장은 1960년 의령군 신반의 형제 많은 보통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있는 부림초등학교를 마친 후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마산으로 ‘유학’했다. 동중학교와 마산중앙고를 졸업한 이후 대학은 집안사정을 감안해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한국해양대학교로 진학했다. 결국 대학에서 기계학을 전공한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운명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그는 ‘남을 배려하는 삶’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기부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특별히 없다. 좌우명을 실천하는 자연스런 과정일 뿐이다.

    다만 한국마사회와의 인연은 그를 영예의 아너소사이어티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지난 2004년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개장된 후 마사회에서 개인 마주(馬主)를 모집했다. 정 사장은 마리당 7000만~8000만 원 하는 경마 3마리를 구입했다. 세월이 가면서 50마리까지 늘렸다. 그중에서 ‘당대불패’ 이름의 경주마가 대통령배 경주에서 우리나라 경마사상 최초로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마주인 정 사장에게 명예와 상금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정 사장은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우승상금 중 2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쾌척, 아너소사이어티 멤버가 됐다.

    앞서 정 사장은 지난 2010년 ‘아름다운 가게’ 창원 2호점에 1000만 원, 2011년 마산합포구 반동초등학교 노후 어린이놀이시설 교체사업에 1000만 원, 모교인 해양대학교 발전기금 5000만 원, 장애인복지관 난방비 500만 원 등을 기부했다. 이달 4일에는 창원장애인복지관 소속 지체장애인들의 의족 구입을 위한 기부금 2000만 원도 전달했다.

    문화예술지원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남관현악단 후원회장을 맡았으며, 지난 2009년부터 경남오페라단도 후원하고 있다.

    회사 사원 복지에도 각별하게 신경을 쓴다. 기숙사와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고 예기치 않은 질병과 사고를 당한 직원들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정이 붕괴되지 않도록 회사에서 최소한의 방어와 부담 책임을 져주고 있다. 정 사장은 교통사고로 휴직한 직원에게 생계비와 복직을 보장했고,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직원에겐 신장이식 비용을 지원, 가족과 다름없는 관심을 기울였고 치료 후에는 복직도 시켰다.

    “제가 사회적인 기부를 하게 된 계기는 특별히 없습니다.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으로서 회사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의 일정 폭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책임의식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4~5년 전부터 회사 이익금에다 제 개인소득의 일부를 더해 연간 2억 원 범위 내에서 장학금이나 이웃돕기를 위한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는 공식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시행 중입니다. 앞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들에게는 회사공헌 프로그램 내에서 지원을 할 것입니다.”

    정영식 대표이사가 이끄는 범한산업은 무한경쟁의 글로벌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다할 각오다.

    “기업은 국민의 최대 복지인 일자리를 만들어 냅니다. 이를 지속하려면 무한경쟁의 글로벌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 수익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독보적 기술력을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시민들께서 범한산업을 더욱 아끼고 사랑해주십시오.”


    글= 이상목 기자 smlee@knnews.co.kr

    사진= 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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