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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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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채 선(시인)

  • 기사입력 : 2013-03-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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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건너 신축공사장 굴착기 소리

    뿌리처럼 뻗어와

    20층 공중을 흔들어댄다.



    바닥을 끌어내려

    더 깊은 허공 만드는 소음과 분진

    유목(遊牧)의 경로를 털어내듯

    지하가 깨어나고 있다.



    팰수록 명징해지는 구렁



    위가 벼랑이고

    아래도 벼랑인 세상을 딛고 서서



    어쩌자고,

    어쩌자고 나는

    허공에 빨래를 널고 있는가.

    - <학산문학> 2013. 봄호

    ☞ 요즘 산모롱이를 돌면 개나리, 산수유, 매화 등 봄꽃들이 어김없이 자릴 잡고 있다. 들꽃은 누가 마중하지 않아도 생명력 보존을 위해 적당한 장소에 ‘터’를 잡고 각각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시는‘신축공사장 굴착기 소리’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이 밀도 있게 진행된다. 인간도 매한가지다. 집단무의식에 의해 되도록 안전한 곳에, 복이 깃든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낡은 것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땅을 파고 철심을 박아 ‘유목(遊牧)의 경로’를 만든다.

    소시민이 새롭게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은 긴장의 연속이다. 벼랑의 틈바구니 속에서 뒤꿈치를 들고 버텨보지만 늘 힘에 부대낀다. 지금 가위눌림으로 온 몸이 땀에 젖어 있다. 구렁 속에서. 박우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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