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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김유경기자

  • 기사입력 : 2013-04-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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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에는 가정을 가진 40대 후반의 사내가 등장한다. 어느 날 연애지상주의파 노처녀가 나타나 연애를 걸고, 사내는 고민에 빠진다. 이 대목에서 미당 선생은 대가다운 면모를 발휘한다. ‘나도 이러한 시험에 들었었다’고 고백한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공자의 말씀을 빌려 ‘침묵하겠다’고 말한다. ‘논어’에는 공자가 위나라의 이름난 색녀 남자(南自)를 만난 후 자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자로가 공자께 ‘왜 그런 여인을 만났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내자 공자는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天厭之)’라는 한마디로 일축해버린다. 미당 선생과 노처녀, 그리고 공자와 남자(南自) 사이의 일은 오직 그 넷만이 알 뿐이다.

    지난달 말 경남무용협회와 창원미술협회의 현 지회장과 전 지부장에 대한 제명 논란이 일었다. 두 협회의 전·현직 회장이 제명 위기에 놓이게 된 문제의 핵심에는 ‘불분명한 예산집행’이라는 껄끄러운 사안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두 회장의 책임으로 돌리면 깨끗하게 해결될 문제일까. 사실 도내 예술단체 예산집행에 관련된 잡음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집행부의 운영 미숙, 공금에 대한 사리사욕 등 행태도 갖가지다. 대를 이어 내려온 이러한 관행은 도려내기 힘든 암세포처럼 자라나 곪아 터지기 직전까지 가서야 바깥에 알려진다. 예술인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쉬쉬하며 키워온 데에는 이것이 협회에 대한 예산 지원을 끊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재정 마련이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예산집행 관련 의혹이 드러날 경우 3~4년간 해당 단체 예산지원을 중단하는 도의 방침은 치명타로 여겨지기 때문. 고아한 ‘예술’을 논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예술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는 일을 해온 것이다.

    며칠 전, 경남도가 경남무용협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창원미술협회 이사진은 전임 집행부에 대한 진정서를 상급기관에 제출하려는 계획을 수립 중이다. 이에 대한 결과는 모두가 밝은 눈으로 지켜볼 일이다.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라는 말로 침묵하기에는, 그들만이 알고 쉬쉬하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유경기자(문화체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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