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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돼지가 죽던 날- 정치섭 기자

  • 기사입력 : 2013-07-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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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축장 갈고리에 10여 마리의 돼지가 거꾸로 매달렸다. 새까만 배경이 도축된 돼지의 분홍빛 피부를 더 도드라지게 비췄다. 기자의 시선이 중간에 머무른다. 사람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이 돼지와 함께 도축장 갈고리에 걸려 있다.

    김혜진 사진작가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전시회에 걸린 사진이다. 그녀는 “더러운 축사 환경에서 먹이사슬에 희생,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돼지의 모습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과 같다”고 설명했다.

    고백건대 기자에게는 돼지의 죽음을 단순히 기삿거리로 생각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지난달 25일 김해의 한 양돈농가를 찾았을 때 일이다.


    폐사한 돼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차를 달렸다. 그러나 도착 직전까지도 악취가 나지 않았다. 허탕이라고 생각할 즈음, 음식물이 썩는 비릿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축사에 다가갈수록 냄새는 시큼한 악취로 변해갔다.

    좋은 기삿거리라는 생각으로 들어간 축사 안은 상상보다 참혹했다. 흡사 사람처럼 드러누운 100kg에 육박하는 돼지 30~40마리가 오물과 뒤엉켜 부패하고 있었다.

    다음 날 현장을 방문한 김해시 관계자는 “오물이 가득한 바닥 등 열악한 축사 환경이 폐사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에 사랑받는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는 비인간적인 사육 행태로 세계인의 지탄을 받았다. 거위의 입에 깔때기를 꽂고 음식물을 마구 쑤셔넣는 폭력적인 모습이 오물로 가득한 일부 양돈농가의 심각한 사육 환경과 오버랩됐다.

    열악한 사육 환경에서 기른 돼지를 먹거리로 판매하는 행위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행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정치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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