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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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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염된 국어사전- 국어사전에도 일본말 찌꺼기가 있다?

잉꼬부부·품절 등 일본말 사용 비판
일본말로 잘못 분류한 한국어도 지적

  • 기사입력 : 2013-08-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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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봉틀을 뜻하는 미싱은 sewing machine에서 머신만을 발음한 일본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일본어에서는 속으로 채우기만 하면 앙꼬가 된다. 한국어에서는 앙꼬를 팥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가 주요 행사 날에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국민의례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제국주의시대 일본 기독교단이 정한 의례의식으로,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만든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궁성요배, 기미가요 제창, 신사참배를 뜻하는 말이다.

    국위선양이란 말은 ‘나라의 권력이나 위엄을 널리 떨치게 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일본 제국주의 잔재다. 어원을 보면 ‘億兆安撫國威宣揚(억조안무국위선양)の御宸翰(어신한)とは’이다. 뜻을 보면 ‘신하들은 천황을 도와 국가를 지키고 황국신민을 있게 한 시조신을 위로하여 일본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책의 저자는 국경일 등 주요 행사 때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나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등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떨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해방된 지 68년이 지났지만 일본말 찌꺼기가 걸러지지 못한 채 우리들이 일상에서 예사롭게 쓰고 있는 식민지 잔재를 당장 떨쳐내자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국어사전을 올바르게 재정비하자고 주장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불태워라’라는 파격적인 책 제목을 붙이려 했던 저자의 의지가 보인다.

    책의 저자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문화교류와 소통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진정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외교관이기도 하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객원연구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로 일했던 그는 지금은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걸러내는 작업을 통해 올바른 우리말글살이를 널리 알리고 있다. 더불어 국립국어원 순화위원,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친일파 청산 작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광복을 맞이하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 삶 깊숙한 곳에는 그 뜻을 알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일본 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조차 이 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단어의 어원을 알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는 국가기관으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국어의 모든 것을 국가기관에만 의지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이 날카롭게 감시하지 않은 잘못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일본말 사용 사례를 감시하는 감시자의 눈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유도리’나 ‘단품’, ‘다구리’와 같이 일본말 찌꺼기인 줄 뻔히 짐작하면서도 쓰는 말뿐만 아니라 ‘잉꼬부부’, ‘다대기’, ‘기합’, ‘품절’처럼 우리말인 줄로만 알고 쓰던 일본말 찌꺼기의 역사와 유래, 쓰임새에 대해 낱낱이 밝히면서 국어사전을 만드는 기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잊지 않는다.

    또한 이 작업을 통해 일본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주장하기보다 일본말 찌꺼기를 순화해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해 읽는 이가 스스로 일본말 찌꺼기 사용에 대해 각성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본말 찌꺼기를 주제로 한 기존 책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오래전 일본에 한자 문명을 전파했던 우리가 지금은 오히려 일본식 한자를 쓰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앞서 갔던 민족의 자존심까지 구겨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특히 일본 센소지 소장 ‘수월관음도’ 등을 사례로 들며 고려 불화의 독보적인 가치와 표구 기술을 두고 예전부터 쓰던 ‘장황’이라는 말 대신 표구라는 말을 쓰는 것이나, 일본 요리에는 쓰이지 않는 갖은 양념이라는 개념을 일본말 다대기에 대한 설명으로 국어사전에 버젓이 올려놓고, ‘여뀌’ 꽃을 설명하면서 어려운 일본 말을 쓰거나 일본 국어대사전을 그대로 베끼기까지 하는 참담한 현실을 지적한다.

    이 밖에 일본 말로 잘못 분류한 한국어, 국어사전에 실린 일본말과 실리지 않은 일본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순화하라고 표시해놓고 그 이유를 밝히지 않거나 예전에 쓰던 한자를 버리고 일본 한자로 바꿔 써 일본말로 정의 내리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무원칙도 고발한다.

    이윤옥 저, 인물과 사상사, 1만3000원 

    정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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