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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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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열차, 성적이라는 이름의 전차- 조 민(시인)

  • 기사입력 : 2013-08-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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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봉준호 감독)를 탄 관객이 800만 명을 넘었다. 폭염 속을 뚫고 흥행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역시 봉준호다. 천재감독인 그의 엔진은 여전히 힘이 세다. 가슴이 펑! 뚫렸다. <폭염열차>가 가슴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이마가 금방 서늘해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실컷 울고 실컷 웃고 났더니 <설국열차>가 자꾸 <성적열차>로 읽혀진다. 무슨 일인가. 직업병인가? 오독의 재미인가? 오독의 힘인가? 잘 모르겠다. 최근 들어 오독하는 습관이 생겼다. 난독증 증세인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거나 말 나온 김에 두 열차를 비교해 보자. 이것도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두 열차는 앞으로 전진, 무조건 전진만 하는 열차라는 점에서 같다. 열차 오타쿠가 만든 영구 동력 엔진을 가진 <설국열차>(무려 17년간을 달렸다)와 세계 최고의 교육비와 교육열 엔진을 단 <성적열차>는 둘 다 전진밖에 모른다. 간이역도 없고 휴게소도 없다. 후진도 없고 일단 정지도 없다. 열차 스스로가 내린 신탁에 묵묵히 따를 뿐이다.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설국열차에서’, ‘1등해야 한다. 1등만이 살 길이다. 성적열차에서’.

    열차 밖의 세계도 같다. <설국열차> 밖은 죽음의 세계, 빙하뿐인 세계다. <성적열차> 밖도 마찬가지다. 제도권 시스템을 벗어난 사회는 좌절과 실패, 가난이라는 이름의 죽음뿐이라고 인식된다. 그래서 1등급은 맨 앞 칸에서 다양하고 알찬 스펙을 쌓으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산다. 부끄러움을 모르고도 잘 산다. 반면에 9등급은 꼬리칸에서 희망 없는 투명인간이 되어 뒷골목을 방황하거나 옥상에서 떨어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아,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가 기억난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배우 비비안 리가 열연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권력도 욕망도 계급도 교육도 다 같은 말?

    <설국열차>는 아주 철저한 계급사회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설국열차>는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들이 생존과 번식을 이어가며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이다. 계급열차이다. 꼬리칸은 비굴하고 천한 불가촉천민이 살고, 맨 앞 칸 기계실은 폭력과 부당한 권력의 핵심인 지배자가 산다. 공부가 제일 쉬운 1등급, 머리만 쓰는 1%가 자기들만의 특구와 특혜를 지키기 위해 묵비권 행사, 모르쇠 일관, 철면피 작전 등을 펼치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지키고 사는 것이다(그렇지 않은 1%는 빼고). 교실칸에서 광신도의 열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엔진은 영원하다! 덜컹덜컹 칙칙폭폭 윌포드, 윌포드, 만세”라며 윌포드 찬가를 부르는 만삭의 여선생의 눈빛이 바로 그것이다. 한 번 지배자는 영원한 지배자이고, 한 번 불가촉천민은 영원한 불가촉천민인 것이다. 권력과 계급의 이동은 있을 수 없다. 앞으로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폐쇄공간 교실칸에서, 네모 반듯한 교실 안에서.

    아, 이 폭염에 무슨 폭탄 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더위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나? 아니다. 그게 아니다. 세계 제일의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48시간마다 청소년이 한 명씩 자살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모순된 현실이 더위를 먹게 만든 것이다. 화병에다가 울화병까지 걸리게 한 것이다. 어른의 욕망이 만든 모순된 사회, 그 사회가 만든 구조적인 문제를 왜 어린 청소년들이 떠안고 가야 하는지, 책임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국열차>나 <성적열차>나 그게 그거다. 어쨌든 <설국열차>의 불가촉천민의 반란과 봉기는 성공한다. 열차를 파괴시키고 열차와 사람과 계급을 다 파괴하고서야 끝난다. 열차 안에서가 아니라 열차 밖에서 희망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살아남은 두 아이, 빙하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어 죽을지, 북극곰에게 찢겨 죽을지, 아니면 제2의 아담과 이브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기관사도 간이역도 없는 <성적열차>는 언제쯤 궤도를 바꿀 수 있을까? 언제쯤 ‘은하철도 999’처럼 철로 없이 달릴 것인지…. 설마 바꿀 수 없는 건 아니겠지? <설국열차>처럼 그 누군가가 폭파시켜야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조 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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