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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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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황혼의 책- 서인숙(수필가)

  • 기사입력 : 2013-09-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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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이 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과학이 극도로 발달되어 기계가 사람이요 사람이 기계가 된 듯한 시대다. 누가 이 편리한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터넷을 마다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어느 대학에선 국문학 창작과를 없앨 정도로 과학과 경제는 오늘날의 사회요 삶이 되었다.

    그러나 과학시대에 인생을 걸거나 문화, 인문학을 외면하거나 문학을 외면한다 해도 문화는 즉 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과제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자연과 과학. 문화와 인간이 아우르는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인간 최대의 이상이요 행복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즈음 과학시대에서 정년퇴직을 했거나 아이들을 자기 길로 보낸 노인들에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한국뿐만이 아닌 것 같다.

    세계 곳곳에서 백세시대를 앞두고 자기 삶의 흔적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싶다는 노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월. 아무리 경제적으로 인간적으로 걱정 없는 풍부한 삶이라 해도 그곳엔 절망, 좌절, 슬픔이 깃든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책일지라도 그 책은 자기의 인생이요 삶이요 보배인 것이다.

    그가 죽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질지도 모를 그 책, 황혼의 책이다.

    살아 온 길, 살아 갔던 길을 쓴 그 낱말 하나하나에 문장 한 줄에 그 사람의 삶과 꿈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을 가슴에 품었을 때 주마등처럼 흘러간 자기 인생을 추억할 것이다. 얼마나 감격적이며 얼마나 그리움에 설렜을까.

    유년 시절 누가 시인이 아니었든가. 시는 나를 보는 거울이다. 아득한 어느 곳을 걸어가는 나그네 길이다. 노년엔 나무를 닮고 싶고, 산과 바다를 닮고 싶어진다.

    얼마 전 칠십에 가까운 할머니가 15년이나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공부를 해 틈틈이 모은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 해 그림과 글이 어울린 아름다운 책을 출간했다. 그 분은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과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의 감동에서 재판까지 나올 정도였다. 글 솜씨가 좀 서툴면 어떠랴. 문장이 문학성이 약해도 어떠랴. 그 책은 그 사람의 분신이요 인생이요 목숨이다.

    이렇듯 이런 일들이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바람처럼 꿈처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시대와 앞날의 시대에 있어 인간은 독립적이어야 하며, 자기가 자기를 소중히 여기며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도 의지하지 않는 이 지구의 한 사람임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 자기가 자기를 소중히 여긴다면 무슨 나쁜 일을 할 수 있을까.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남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어느 전 대통령 부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자금, 추징금 등으로 돈을 이리 감추고 저리 감춘 돈의 사람이 된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인간, 최대의 소망을 배신한 모습이었다.

    돈은 또 하나의 자유요 권력이기도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진정 그분은 인생이 무엇이며, 삶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존경할 수가 없었다.

    노을 번진 창가에 앉아 시를 읽는 노년의 모습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의 별 같은 모습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언젠가 무덤 속에서 흙의 시인이 되는 것을….

    서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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