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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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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때 그 추석- 박동소(독림가·함양군 함양읍)

  • 기사입력 : 2013-09-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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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가지붕에 가녀린 박 줄기가 보름달 닮은 큰 박을 힘겹게 붙들고, 빨간 고추가 젖은 몸을 말리며 햇빛에 졸고 있을 때쯤, 어김없이 찾아오던 어릴 때의 그 추석.

    휘영청 밝은 달빛이 앞마당에 가득할 때, 비녀머리 곱게도 하신 엄마가 새하얀 송편을 빚어내며 제수를 마련할 때, 갑자기 많아진 먹거리가 놀랍고 즐겁던 그때 그 추석.

    씨 뿌려 가꾸며, 오랜 시간 기다려 얻은 먹거리들을, 가리고, 다듬고, 두드리고, 씻고, 굽고, 찌고, 튀기고, 끓이며 젓고, 울어 내고, 익히고 기다리며 온 정성을 다해 제수로 차려 놓고, 무릎 꿇고 조상님의 은덕에 감사하던 그 추석.

    우리네 농부들의 풍년가를 슬프게 하고 있는 이름도 생소한 먹거리들을 생각 없이 조상님 앞에 올려놓고, 또 남의 손이나 기계로 만든 제수를 손쉽게 구해 차리면서도 좀 더 편한 방법으로 이제 맞춤형 제수를 찾고 있다는 오늘, 우리 부모 우리 키울 적에 언제 시간 탓하고, 일 탓하며 당신 편한 방법부터 찾은 적이 있었던가?

    지니고 있는 가치보다도 편리하고 쉬운 쪽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오늘, 끝없는 편리함의 그 끝에 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가 오히려 두렵다.

    할아버지 안부를 묻는 군대 간 삼촌의 편지에는 여러 집안의 안부가 빠지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보다는 이웃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많이 알고 서로 얘기 자주 나누며 살았던 그때, 모든 시작은 할아버지부터이고, 할아버지는 손자가 먼저이던 그때, 우리네 어른들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또 티끌 모아 태산 만드는 삶의 방식이 늘 몸에 배어 있었다. 돈 대신 송편을 뜨거울세라 호호 불어 아이들 손에 쥐여 주던 엄마, 골목에는 먹거리를 서로 나누는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이 바쁘고, 자주 들어야 했던 어른들의 꾸지람을 그날만은 듣지 않아도 되게 해 주었던 고맙고 신나던 그때 그 추석.

    또 꽤 먼 촌수의 우리 집 제삿날도 잊지 않고 찾아 주던 큰집 맏종부가 놀랍고 고마웠던 그때이기도 했다.

    열 촌수나 되는 집안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면서 따뜻한 가슴을 서로 열던 그때 그 추석, 거기서 아이들은 나와 함께 우리들도 있다는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집안사람끼리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가정의 위계질서가 설 수가 있었지만, 조상님께서 지켜 오신 높은 윤리의식도 편리함이나 계산 앞에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먼저 베푸는 쪽에는 받는 쪽에서는 모르는 행복이 있는 것, 또 그것은 언젠가 베푸는 쪽으로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 입으로 말하면 입으로 대답하고, 가슴으로 말하면 가슴으로 대답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던가? 가슴으로 하는 말은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 감동이 넘치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이 아니던가?

    이웃집 닭 한 마리쯤 서리해 먹어도 웃을 수 있는 그때 그 시대는 올 수 없는 것일까? 편리해진 오늘, 그런데도 왠지 의식주가 힘들었을 그때로 자꾸 돌아가고 싶은 것은, 예순 한가운데를 막 넘어가고 있는 사람의 향수만은 아닐 테지요.

    박동소(독림가·함양군 함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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