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0일 (금)
전체메뉴

[가고파] 억새- 이상권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3-10-23 11:00:00
  •   


  •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1930년대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의 첫 소절이다. ‘으악새’가 식물 ‘억새’인지, 조류 ‘왜가리’인지 논쟁이 있다. 갈수록 왜가리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는 억새를 보면 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억새와 비슷한 모양의 갈대가 있다. 억새는 산과 들에 골고루 자라지만 갈대는 물 가까운 곳에 있다. 억새는 키가 1~2m가량이며 이삭은 은빛인데, 갈대는 3m 정도로 갈색이다.

    ▼가을 나들이는 단풍구경을 으뜸으로 꼽는다. 하지만 은은한 멋의 억새는 또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경남에서는 창녕 화왕산이 대표적인 억새산 중 하나다. 화산 폭발로 산 정상부 분화구에 생긴 24만㎡의 억새평원은 장관이다. 햇살 아래 눈부신 은빛 물결을 이루다, 하얀 솜털처럼 나부끼다가, 잿빛으로 일렁인다. 또 양산, 밀양 등에 맞닿은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7개 모여 있는 영남알프스의 억새길도 진풍경이다.

    ▼황동규 시인은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이란 시에서 화왕산 억새를 노래했다.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화왕산 억새들은/환한 중에도 환한 소리로 서걱대고 있으리/온몸으로 서걱대다 저도 몰래/속까지 다 꺼내놓고/다 같이 귀 가늘게 멀어 서걱대고 있으리/(하략)’ 일흔이 넘은 시인도 ‘환장’하게 만든 억새 절정기는 보통 10월 마지막 주부터 12월 초순까지로 친다. 지금부터 적기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는 보기와는 달리 강인하다. 줄기는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 메마른 잎사귀는 손을 베일 만큼 날카롭다. 눈처럼 흩날리는 씨앗은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집념을 보인다. 뿌리는 더욱 견고해 땅속으로 뻗어가는 줄기가 마디마디 새로운 개체를 땅위로 올리며 점유면적을 넓힌다. 그래서 억새가 무리를 이루면 다른 식물은 살기 어렵다. 이렇게 억세서 억새인 듯싶다. 마음을 사로잡는 은빛 물결 속에서 외유내강의 이치도 되새긴다면 이 또한 덤이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대우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상권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