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6일 (수)
전체메뉴

가고파국화축제 對 마산가고파국화축제-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3-10-25 11:00:00
  •   



  • 전국 최대 규모 국화잔치라는 가고파국화축제가 오늘 개막했다.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보면 어딘가 낯선 느낌이 든다. 자세히 보면 수년 전 같은 행사에서 보았던 ‘마산’이 빠져있다. 문제가 없을까 하던 차에 아니나 다를까, 마산살리기 범시민연합 회원이라는 시민 10여 명은 지난달 23일 창원시를 방문해 축제 명에 ‘마산’을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구 창원에서 열리는 남산상봉제에는 창원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교롭게도 마산의 많은 행사에는 당시의 시명(市名)이 빠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만날제’도 그런 예다. 마산 토박이들, 특히 마산이라는 행정구역명을 추억으로 먹고사는 이들에게는 쓰린 현실이다. 축제의 즐거움보다는 ‘마산’이라는 브랜드가 빠진 데 대한 상실감이 더 크다면, 이름으로 촉발된 갈등은 예고된 일이다.

    고유 명칭을 기억하고 불러준다는 것은 상대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다. 뇌의 기억창고에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합리적인 분류표를 만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상들은 세상만물에 거의 예외 없이 이름을 부여했다. 풀 한 포기, 미물까지 형태와 특성에 걸맞은 이름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사물을 분간했다. 무덤가에 꼬부랑하게 핀 꽃이 ‘할매’ 등 같아 할미꽃, 활짝 핀 꽃모양이 대나무 모자(패랭이) 같다고 패랭이꽃이라 불렀다. 백일 동안 꽃이 붉게 핀다고 백일홍, 노인들에게 드리는 고기(고배어:古背魚)라서 고등어다. 그리 보면 이름 없는 사물이 거의 없다. 이름을 보면 사물의 성정이나 당시의 환경적 요소를 짐작해볼 수 있는 것도 있다. 흔히들 이름 없는 꽃이라는 것들도 실상 이름은 있으되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이름 이야기를 한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Romeo&Juliet)’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무도회장에서 운명적인 조우를 한 몬테규 가문 출신의 로미오와 캐플릿 가문의 줄리엣. 그 둘을 죽음으로 내몬 명목상의 원죄는 이름이다. 원한에 사무친 두 가문의 악연은 비극의 씨앗이 됐다. 가문이라는 애꿎은 틀은 단검과 독약이 되어 마침내 둘을 죽음으로 내몬다. 로미오에게 가문의 이름을 버리고 그 대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라고 호소하는 줄리엣의 대사는 긴 여운을 남긴다.

    “이름 안에는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장미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향이 나지 않나요.”(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word would smell as sweet.) 줄리엣은 절규했지만 결국 둘은 이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름(명칭)은 그런 것이다. 대회나 행사의 이름에는 나름의 이유와 근원이 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마산가고파국화축제는 우리나라 국화 재배 역사와 연관성이 있다. 지난 1960년대 마산 회원동 일대에서 여섯 농가가 전국 최초로 국화를 상업재배했다. 그래서 국화산업의 메카가 됐고 이게 국화축제로 연결된 것이다. 근원성(마산)과 상징성(가고파) 실용성(국화축제)을 함께 가진 명칭이 마산가고파국화축제다.

    마산가고파국화축제의 명칭이 이런 불만을 불러온 것은 진해군항제나 지금 열리고 있는 창원페스티벌과 같은 기존 행사의 명칭을 고수했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국화축제만 두고 하는 얘기로 협의해석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니다. 통합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두고 하는 얘기다. 3개의 시가 하나로 “헤쳐 모여”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작명에는 원칙이 있어야 했다. 통합의 정신을 내세우든지, 개별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체제로 가든지 명확한 기준이 세웠졌어야 했다. 진해군항제나 창원페스티벌은 고유명칭을 유지하면서 유독 가고파에만 마산을 빼버렸으니 형평은 사라지고 갈등만 커지는 것이다.

    이왕 통합을 했으면 함께 정체성을 추구할 수 있는 상생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게 통합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옛 이름을 없애고 새 이름을 단 깃발 아래 우르르 모여들도록 강제할 게 아니라 태생적 특색과 특성을 존중하며 서서히 융합하도록 하는 것도 상생의 묘수다.

    허충호(논설실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