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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인의 이름표- 김이삭(시인·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3-11-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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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이라는 이름. 참 가슴 설레고 가을빛을 닮은 이름이다. 이 예쁜 이름표를 단 지 십 년이 되어 간다. 시인이 되기 전에는 하루 종일 시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시의 글감만 찾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고부터는 시를 쓰는 게 두려워졌다.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됐다. 아무래도 나 자신의 무능함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한 몇 년 ‘문학밥상’을 기웃거리다 보니 내 입맛에 맞는 반찬도 없을 뿐더러, 이 밥상을 받는 것이 두려워졌다. 내가 차린 밥상은 늘 영양이 부족한 재료들로 가득했다.

    아주 오래전 문학행사에 갔다가 안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깊은 밤 시인과 지인 두 명이랑 그렇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나이의 장벽을 넘어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걷게 됐다. 시의 재료가 마구마구 쏟아질 것 같은 밤이었다. 각자 이 멋진 배경에 매료돼 말없이 걸었다.

    “술 잘 마시나요?” 시인의 질문에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하자 “에이, 그러면 시 잘 쓰기 글렀네.” 시인이 웃으며 말했다. 시인은 그냥 웃으며 내뱉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때 전나무 숲에서 나던 풋풋한 향기를 뒤로한 채 속이 끓어 한숨도 자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술 못 마셔도 시를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 이후 더 열심히 서점으로 발품을 팔았다. 허겁지겁 소화도 되지 않은 ‘시’들을 먹었다. 그때 정기구독하게 된 문학잡지가 13군데나 됐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시인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내 언제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적 있는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언제나 삶과 시를 대할 때 뜨뜻미지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자리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고 주목받는 것도 무척 부담스럽다.

    나는 성장이 멈춘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참 많다. 구석을 좋아하고 툭하면 삐지고 혼자 있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둠이 오랫동안 나를 가두어 놓고 내 영을 지배했다. 나는 우울했고, 세상의 끝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느 날 벚나무 빈 가지에 하나 남아 바람에 온몸을 떨고 있는 잎을 보았다. 아니 나 자신을 보았다. 초라하고 쓸쓸한 마른 잎, 무엇보다 심령이 메말라 있는 나를 발견했다. 2008년 1월, 나를 지배하고 있던 어둠을 밀어내고 참빛이 찾아왔다. 아니 주님이 가련한 내게 손을 내미셨다. 주님의 집을 떠난 나는 혼자였고, 늘 가을을 탔다. 이제는 안다. 내가 왜 그토록 텅 비어 있었는지….

    우리는 자신의 생은 자신이 운영하는 줄 알고 있다. 아니다. 우리의 생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인도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다 보인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나의 생명이 알 수 없는 무한한 사랑 속에 예속되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80살을 살았다고 한다. 그의 나이 60살이 됐을 때 삶의 공허감을 느꼈다고 한다. 어느 날 쓸쓸히 혼자서 숲속을 걷게 됐는데 그때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다고 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그의 60살,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삶은 빛으로 인도됐다. 육십 평생을 산 세월보다 그 나머지 이십 년이 더 의미 깊은 시간이 됐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모스크바 빈민굴을 시찰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참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간이역에 불과하다.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를 너무 탐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은 미련한 일인 것 같다. 한때 나 또한 이름을 얻기 위해 동서남북 분주히 다니며 사람들의 술 안줏거리로 씹힌 적이 많았다. 또한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도 많으리라. 미안하다 시야, 미안하다 내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했던 지인들이여! 이제는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한다. 다가올 2014년은 정갈한 그릇으로 비워 있고 싶다.

    김이삭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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