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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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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동안거(冬安居)에 들다- 문복주(시인)

  • 기사입력 : 2013-11-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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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사는 산골은 함양 대봉산 자락이라 겨울이 일찍 옵니다. 한겨울 서너 번은 폭설로 길이 끊깁니다. 그러면 사나흘은 고립되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하여 군대처럼 월동준비를 해둡니다. 부탄가스, 전등, 생수, 라면, 통조림, 햇반 같은 비상식량을 배낭에 담아 창고에 놓아둡니다. 한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 확보야말로 산골에서 겨울을 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 중 하나입니다. 도끼로 참나무를 쩍쩍 쪼개어 장작을 한가득 쌓아 놓으면 그야말로 부자가 된 듯한 그 기분, 산골사람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겁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고 세상과 고립이 되는 긴 동면의 시간이 올 겁니다.

    불교에서는 하안거와 동안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음력 시월 보름에서 정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동안거라고 해서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는데 올해는 11월 17일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아니지만 산에 산다는 이유로 나의 동안거도 이제 곧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와서 동안거가 시작되면 나는 기쁩니다. 왜냐면 마침내 세상과의 번잡한 관계를 멀리하고 나만의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세상 이치에 밝아진 나를 느끼기에 수행정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어김없이 겨울은 오고 자연은 자연스럽게 동안거를 통하여 나를 바르게 세워줍니다.

    “그렇지? 그렇지? 자연의 이치는 참 놀랍지? 봐 봐.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듯 동물들도 깨우쳐서 스스로 겨울잠을 자는 거야. 겨울잠을 자면서 푹 쉬고 위를 비어놓고 머리에 든 것도 텅텅 비어 놓기 때문에 봄이 오면 가볍게 날씬하게 건강하게 뛰놀며 새롭게 산을 타는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이번 겨울에는 가진 것들을 다 버리고 비워놓아야 해. 고집만 들어 있는 머리까지도 텅 비워놓아야 해.” 아내가 갑자기 신이 나서 외칩니다.

    나는 ‘산은 산 물은 물’의 성철 스님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성철 스님 입적 20주년이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평생 오직 두 벌 옷만을 가지고 살았던 그분의 책표지 사진을 찾아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바라봅니다. 다 헤지고 헤진 누더기에 누더기를 덧댄 옷을 입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세상을 보여주시던 분. 긴긴 겨울 나는 무엇을 할까? 그래, 무엇이든 비우기로 마음을 잡아 봅니다.

    문복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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