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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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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경제회복 온기 퍼지려면 ‘호자의 묘(妙)’ 필요- 조문기(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군가 조금 희생하는 용기와 지혜 발휘해야

  • 기사입력 : 2013-11-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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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인체의 혈액과도 같은 돈이 잘 돌아야 한다. 요즘 돈의 회전속도가 느려졌다는 소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통화유통속도’가 연평균 1.5%씩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울러 우리 경제는 금년 3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1%에 이르는 호조를 보였지만 삼성전자 등 소수 대기업의 수출에 기인한 점을 감안하면 경기가 완연한 회복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커지면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의 경기 인식은 여전히 싸늘하다.

    침체된 체감경기가 회복되려면 민간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살아나야 한다. 우리 경제의 현실은 어떠한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고용을 통한 소득 증가가 미약하고 과다한 가계부채에 눌려 민간의 소비 회복도 여의치가 않은 상황이다. 기업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뚜렷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 데다 미래마저 불확실해 투자 실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금융시장을 보면 중소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담보 없이 투자자금을 빌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것 같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담보대출 비율이 2008년 이후 오히려 높아져, 그동안 50% 내외였던 비율이 작년에는 55.9%로 상승했고, ‘기술평가 시스템’의 도입을 통해 기술력 있는 기업에 대해 신용대출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실제 효과 달성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처럼 수출, 성장률 등 지표경기의 완만한 회복세에도 최근의 경제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계, 기업, 은행 등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위험(리스크) 회피 성향이 경기회복을 저해하는 주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경기가 활성화되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한 도전을 감행하는 경제주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험과 도전 속에서 창조경제의 싹이 자란다. 누구에게나 위험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도전하고 감당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앞날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확실하게 수지를 맞추려다 보니 문제가 풀리지 않고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누군가는 전체를 위해 다소간의 손해를 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모두가 돈을 벌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머뭇거리고만 있을 뿐이다.

    지난주 옛 직장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에 솔깃했다. 13세기 터키 땅에 살았던 ‘나스레딘 호자’의 이야기다. 한 남자가 자신이 소유한 낙타들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장남은 반, 둘째는 3분의 1, 막내는 9분의 1을 가지되 대신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유언했다. 그런데 그가 가진 낙타는 17마리라 산술적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호자가 지혜를 발휘해 자신의 낙타 한 마리를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다. 호자의 기여로 낙타는 모두 18마리가 되어 장남은 9마리, 둘째는 6마리, 막내는 2마리를 나누어 갖게 되었으며 형제는 모두 만족했다. 뿐만 아니라 호자도 나누고 마지막에 남은 낙타 한 마리를 되돌려 받고 떠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경제가 어려울수록 모두가 자신의 것을 조금도 잃지 않으려 고집한다면 자기 몫은커녕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군가 조금이라도 희생하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가진 능력에 비례해 세금이나 기부의 형태로 공동체를 위해 내어 놓기도 하고 다소간의 위험을 안고 투자해야 할 것이다.

    어느덧 찬바람이 스치며 겨울의 길목에 들어섰다. 백무산 시인의 ‘장작불’을 되뇌며 우리 경제에도 하루빨리 회복의 온기가 구석구석까지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조문기 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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