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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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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조 민(시인)

  • 기사입력 : 2013-11-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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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뮬라크르’의 세계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복제된 현실,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시늉, 흉내 등의 뜻을 가진 프랑스어다.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인데, 모조품, 가짜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가상현실 체험 TV 프로그램인 <대단한 시집>, <진짜사나이>, <우리 결혼했어요> 등에서 그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대단한 시집>은 시집살이를 복제한 가상 시집이라는 콘셉트, <진짜 사나이>는 군대생활을 복제한 가상 군대라는 콘셉트, <우리 결혼했어요>는 결혼생활을 복제한 가상 부부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이다.

    그런데 이 시뮬라크르에 빠지면 현실인지 아닌지 모를 때가 많다. 진짜 부부인지 가짜 부부인지, 진짜 군인인지 가짜 군인인지 헷갈린다.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것이다. 오히려 다큐보다 더 진실되고 현실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다큐도 또 하나의 시나리오가 아닌가.

    <대단한 시집>이란 시뮬라크르에서 여자연예인 세 명은 시집을 간다. 한 명은 소금농사를 짓는 비금도라는 섬에서, 또 한 명은 꽃게잡이를 하는 충남 서천에서, 나머지 한 명은 고추농사 짓는 3대 대가족이 사는 경북 영양에서 낯설고 서툰 시집살이를 한다. 숟가락 하나도 제대로 씻지 못할 것처럼 생긴 가녀리고 섹시한 연예인이 깡촌에, 그것도 어촌과 농촌과 섬에 시집을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것은 가상현실이고 예능이니까. 때때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도 있으니까.

    가짜 시집살이라는 시뮬라크르에서 가짜 며느리들은 많이 울고 많이 웃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더 후회하고 갈등하고 번민한다. ‘대가족 시집살이를 남편도 없이 내가 왜? 아무리 잘해 주어도 시부모는 시부모, 친부모가 아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데 왜 나는 아무 말 못 하나? 며느리가 죄인가? 시부모가 농사일을 한다고 며느리도 해야 하는가? 한 번 시집은 영원한 시집이어야 할까? 이제껏 살아온 환경과는 너무나 다른 시집 환경,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현실 이상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인간적인 고민들이 난무한다는 점에서 이것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예능 프로그램 <히든싱어>에서 진짜 가수의 목소리를 찾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가짜 가수가 진짜 가수보다 더 진짜처럼 부른다면, 그 가짜야말로 진짜가 아니겠는가. 가짜 아이유가 진짜 아이유보다 더 아이유 같다면, 가짜 주현미가 진짜 주현미보다 더 주현미 같다면 어떤가. 결국 주현미가 만든 ‘주현미’라는 시뮬라크르, 아이유가 만든 ‘아이유’라는 시뮬라크르가 있을 뿐이다. 이것도 역시 시뮬라크르가 만든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

    들뢰즈는 말한다. ‘시뮬라크르는 복제품임에도 복제품이 아니다. 원본과 차이가 있는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니라 그 원본, 모델을 넘어 다른 어떤 것을 창조해 내는 복제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뮬라크르는 새롭게 창조된 자기정체성을 갖게 되고, 어떤 기원이나 기초도 갖지 않는 외관들 그 자체인 것이다.

    영화 <아바타>의 큰 몸과 파란 몸을 가진 아바타도 그렇고, 앤디 워홀의 팝아트도 그렇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원본이고 복제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시뮬라크르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인터넷 속에서 기원도 원본도 없는 무한 복제의 세계,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체험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복잡한 현대 사회는 실재와 시뮬라크르가 역전되었을 수도 있고, 그 경계 역시 매우 희미해졌을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수많은 TV 프로그램을 환호하고 기대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시뮬라크르에서 어떤 아바타로 살고 있는지, 이 현실이 어떤 시뮬라크르인지, 또 매트릭스의 ‘진짜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가끔은 생각해보면서 살아갈 일이다.

    당신이 아무리 이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조 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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