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작가칼럼] 캐나다 두 형제- 고동주(수필가)

  • 기사입력 : 2013-12-13 11:00:00
  •   



  • 2013년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한국과 캐나다 대통령의 대화 내용 중 서두(序頭) 부분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6·25 당시 UN군으로 참전했던 캐나다 두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참전했던 동생이 걱정되어 뒤따라 참전했던 형은 1951년 임진강 가평전투에서 불행히도 전사했다. 살아서 귀국한 동생은 형의 전사를 평생 한으로 삼으며 살다가 2012년 노령(老齡)으로 병사(病死)했다. 생전(生前)에 그가 남긴 유언에 따라 부산에 있는 UN기념공원 캐나다 묘역에다 형과 함께 합장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생이 염려돼 타국의 전선(戰線)에까지 뛰어들어 전사한 형이나, 사후(死後)에 먼 이국(異國) 땅에 묻혀 있는 형과 합장된 동생을 어찌 예사롭다 하랴. 이렇게 두 형제는 지구촌의 자유 수호를 위해 싸웠고, 그 현장에 묻혔다.

    어쨌든 이 보도를 접하는 순간, 지나간 아픈 역사이기도 한 1950년 6월 25일을 다시 회상하게 됐다.

    비밀리에 침략준비를 했던 북한 공산군은 그날 새벽 4시를 기하여 38선 전역에 걸쳐 일제히 남침을 감행했던 것이다. 아무런 방어 준비가 없었던 남쪽에서는 생벼락이었다. 3일 만에 서울 전역이 피탈되고, 중공군과 합세해 계속 남으로 탱크를 앞세워 밀어붙였다.

    그러자 세계평화와 안전이라는 공동이념과 목표를 지키기 위하여 급히 UN군이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뜻을 같이한 16개국이 참전해 드디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때 1만 명 이상을 파병했던 나라만도 미국(178만 명)을 위시한 영국, 캐나다, 터키 등이었다.

    그때 만약 UN연합군조차 외면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이런 생생한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공산주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겪지 않은 전후세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보다 6·25전쟁은 남에서 북으로 침략한 전쟁이라고 뒤집어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니 더욱 기막힐 노릇이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잘못 인식된 역사다. 어린 학생들도 더러 북침으로 알고 있다니 어찌된 일일까?

    6·25전쟁 3년간의 전화(戰禍)야말로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남북을 막론하고 전 국토는 폐허가 되지 않았던가. 남북을 합한 인명 피해만도 민간인을 포함해서 450만 명에 이른다니, 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닌가.

    그런데 6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간 오늘까지 휴전 상태일 뿐,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런데도 이 나라 안보(安保) 분위기만은 흐린 날 밤길이라도 걷는 기분이 아닌가. 왜냐하면 북의 주장이기도 한, 미군 철수와 보안법 폐지까지 들고 나오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안방에도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 전쟁이 다시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옛날과는 달리 쌍방이 최첨단 무기로 대결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남북을 가릴 것 없이 일시에 초토화(焦土化)될 것이 분명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몸서리치는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의 그날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먼 나라에까지 와서 희생되고 현장에 묻혀서까지 태극기를 지켜주는 두 형제 영혼에게 부끄럽지 않는 떳떳한 그날은 언제 오려나.

    고동주 수필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