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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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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⑫·끝 Forever romance city, 김해

진정한 김해를 보시려거든, 2000년 전 로맨스를 기억하세요

  • 기사입력 : 2013-12-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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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와 멀리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분성산은 바위로 되어 있다. 분성산성은 산봉우리를 둘러서 타원형을 이루는 테뫼형이다.
    수로왕릉 납릉정문 현판에 남방식 불탑과 한 쌍의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쌍어문 그림은 허왕후의 출신국인 아요디아국의 문장(紋章)으로 추정된다.
    관광콘텐츠 활용을 위해 김해시가 전략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김해역사테마파크.



    수로왕비릉을 뒤로하고 분성산성에 있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김해 천문대로 향했다. 구산터널을 지나 산길을 스적스적 오르니 깊은 가을 낙엽을 다 훑을 듯한 산기슭의 바람이 내려왔다.

    뼈대가 앙상한 억새를 툭툭 건드리면서 가파르지도 험하지도 않은 길을 올랐다. 맞은편으로 푸른 하늘과 맞닿은 유구한 분성산성이 기품 있게 산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지막이 숨이 살짝 가쁠 무렵 천문대로 향하는 포장도로를 오르자 커다란 알처럼 생긴 김해 천문대가 마치 우주의 미래도시에서 떨어져 나온 요새처럼 산정을 차지하고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인 임호산과 김해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부산에서 김해를 잇는 경전철과 해반천이 평행을 이루고, 가야의 길과 해반천의 풍경도 깨끗하게 들어왔다.

    석성으로 축조된 분성산성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형이다. 분성산성터에 서니 김해의 시내는 물론이고 멀리 낙동강 은빛 물결이 굽이쳐 보인다.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긴 여정을 끝내고 바다를 만나면서 만들어진 황금 같은 평야도 펼쳐졌다. 발끝으로 보이는 김해시를 중심으로 가야국 시조의 탄강설화가 있는 구지봉과 동쪽으로는 신어산이 들어왔다. 가야시대 유적들과 문화를 재현한 예스러운 풍경들 사이로 대성동고분군부터 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 수로왕릉이 분성산 아래로 보석처럼 담겨 있었다.

    분성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관광콘텐츠 활용을 위해 김해시가 전략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김해가야테마파크에 들렀다. 널찍한 주차장을 지나 테마파크 안으로 들어서니 철의 제국을 느낄 수 있게 가야국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흙으로 만든 거푸집과 철 제련장들도 옛 모습대로 꾸며져 있어 그곳에서 흐릿하게 철재 두드리는 소리와 화목을 자르는 소리,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느새 해가 어둑해지고 바람이 차가워졌다. 김해한옥체험관이 있는 수로왕릉으로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낙엽이 흩날리는 돌담길을 따라 우뚝 선 홍살문을 지나고 수로왕이 잠든 능으로 향했다. 왕릉 자체는 여타 왕릉과 다르지 않았지만 왕릉 옆으로는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이 있었고 작은 유물관이 있었다. 능은 2000년 세월을 품고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침묵을 지켰다. 나는 다시 정문 앞에 서서 이정표처럼 따라온 두 마리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납릉정문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도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리하며 이 기나긴 여행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인도의 아요디아부터 1만㎞가 넘는 길을 여행하고 오랜 번뇌의 굴레를 벗어나 아주 깨끗한 세상에 발을 디딘 것처럼 마음은 황홀하고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과 같았다. 미세한 바람을 느끼면서 숨소리조차도 편안하게 숙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나는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하면서 동행하지 못한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여행에 대한 편지를 썼다.

    친구!

    저는 처음부터 인도의 아요디아부터 김해에 이르기까지 가야의 흐르는 역사의 강물에 살아 있는 신령스런 두 마리 물고기를 따라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했습니다. 제 삶이 이 여행의 전부인 것처럼 비행기를 탔고 많은 시간을 걸으면서 달리는 기차에도 허겁지겁 오르고 강을 따라 배도 탔습니다. 2000년 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의 분신처럼 여행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푸르고 깊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김해에서 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해는 2000년 전의 영원한 사랑 이야기가 있고 깊은 역사적 사유도 하고 풍요로운 추억도 만들 만한 곳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허황옥이라고 아시는지요? 이름만 들으면 낯선 이름일 듯합니다. 허황옥은 머나먼 인도 땅 아유타국의 공주로 지금부터 서기 32년에 인도에서 태어나 열여섯 나이에 가락국의 수로왕에게 시집오기 위해 가야로 향하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보주, 지금의 안악현에 머물다 가야국으로 다시 향합니다. 허황옥의 능 앞에 있는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이란 묘비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중국의 보주에는 100여 가구 중 80여 가구가 허 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보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양자강을 따라 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펄럭이며 바다를 건너면서 풍랑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풍랑을 이겨내기 위해 파사석(婆娑石)을 배에 실어 균형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 수로왕비릉 옆에 세워진 누각에 잘 보존되어 있는 파사석탑입니다. 그렇게 험난한 길을 거쳐 그녀는 지금의 대한민국 김해 남쪽 해안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의 진해시 용원동에 있는 망산도(望山島)라고 불리는 섬에 처음 발을 딛게 됩니다.

    그녀는 마침내 수로왕을 만나게 되고 처음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許) 씨,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살입니다.” 수로왕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달과 같이 밝아 달의 여인이라 칭하였고 지금 망산도와 황궁의 중간 지점인 명월산 산자락에 장막을 치고 첫날밤을 치르고 마침내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아유타국 공주의 길을 이곳에서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답사한 길은 영원한 사랑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Forever romance road’로 지금 중국의 실크로드처럼 세계적인 테마 루트로 만들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길은 태고부터 생겨나 인간이 다니는 보도부터 우마차가 다니는 비교적 큰 길까지 전쟁을 위하여 혹은 생산과 유통 등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다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특히 급속도로 변화되고 발전되는 길 속에서도 그 시절 그 문화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야기가 담겨 현대에 사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길들이 있습니다. 실크로드가 그랬고 차마고도도 그랬습니다. 이제 김해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천 년 전 허황옥 공주가 거쳐 온 Forever romance road가 있습니다. 그 길에는 허황옥 공주가 지나온 도시의 길목마다 그녀가 남긴 흔적과 같은 두 마리 물고기라는 살아 있는 증거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전의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된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의 세기의 결혼이야기가 있습니다.

    허황옥 공주와 수로왕의 2000년 전 이야기는 하나의 역사의 흐르는 강물처럼 물질문명이 우선시되는 결혼풍토와 사랑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이 각박한 세상을 사는 우리의 갈증을 풀어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들꽃과 같은 아름다운 향기를 줄 것입니다. 저는 이 길이 영원한 사랑의 길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김해시가 느낌과 끌림이 있는 세계적인 영원한 사랑의 테마도시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세상에 알려지고 지속가능한 스토리텔링사업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김해시나 유관 단체의 열정과 관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허황옥 공주의 영원한 사랑의 길목을 따라온 제 여행 이야기를 이제 마무리합니다. 행복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후기= 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가 있었습니다. 왕비의 성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수로왕은 한 아들에게 허씨(許氏) 성을 내려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긴 여행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원한 사랑이야기는 지금 수로왕릉 정문의 두 마리 물고기가 되어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높지도 낮지도 않게 서로를 마주보면서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김해를 보시려거든 허황옥 공주와 수로왕이 처음 만나는 순간을 꼭 기억하시고 가셔야 합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許) 씨,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살입니다.”


    글·사진=남기환(사진작가·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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