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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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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초보 이장의 공공비축미곡 수매현장 엿보기- 김재수(영화감독·거창 신원면 수동마을 이장)

  • 기사입력 : 2013-12-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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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촌한 지 어느새 5년이 흘렀다. 귀촌 다음해 난생처음 벼농사를 지어봤다. 1년 동안 88번의 손이 간다는 논농사다. 초짜라 그다지 수확은 좋지 않았지만 임대료(쌀로 줬다)를 주고도 꽤 많이 남았다. 나는 그 소중한 쌀로 직접 밥을 지어 아내에게 윤기 반지르르한 밥상을 차려준 기억이 있다.

    오늘은 우리 마을 공공비축미곡 수매가 있는 날인데 걱정이 앞선다. 서둘러 수매현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 간다.

    수매 현장이다. 이미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락 포대를 쌓고 있다. 마치 견고한 성의 모습이다. 지금 나는 이장이 되어 4년 만에 다시금 벼를 만지고 있다. 벼의 건조 여부를 확인하고 각 개인별 수매량을 대조 확인한다. 그때 우리 마을 전 이장이 나를 부른다. “이장님, 탁주 한 사발 하시지예. 요 뜨끈한 어묵도 있심니다.” 식전 공복에 탁주 한 사발을 들이켠다. 알싸하다.

    올해 우리 마을에 배정된 수매량은 건조 벼 기준으로 총 275포대(1포대/40㎏)가 전부다. 생산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매량이지만 농부들은 푸념 속의 체념의 자세로 담당 공무원과 수매 검사원을 기다린다. 올해 정부 매입 단가는 특등이 5만6800원이고 1등급이 5만5000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벼 수확기(10~12월) 산지 쌀값 조사 결과에 따라 내년 1월 중에 사후 정산한다고 한다. 주위가 갑자기 소란스럽다. 보면 군수를 비롯한 군의원 등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수매 현장에 나타나 농부들의 거친 손을 맞잡는다. 그런데 손을 내민 입장이나 손을 잡는 입장이나 그들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내민 쪽은 송구하고 미안한 입장이고, 잡는 쪽은 억울하고 서운한 입장이었다. 경계의 모호함!

    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절대적 주식이다. 그 쌀이 이즘 자급률 80%에 턱걸이 중이다. 한때는 거의 100%를 유지했었다. 곡물자급률로 따지면 겨우 26%에 머무른다.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지구의 사막화로 곡물 생산은 감소할 것이고, 우리나라 같은 절대적 농지부족국가는 필연적으로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쌀만큼이라도 자급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 ‘농자천하지대본’ 풍물패의 찢겨진 깃발의 의미를 애써 기억할 것이다.

    김재수 영화감독·거창 신원면 수동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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