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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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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무대, 앞과 뒤편- 이문재(문화체육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3-12-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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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오래된 얘기다. 미스코리아 대회 무대 뒤는 관객들이 바라보는 무대와는 딴판이라는 것.

    보이는 무대 위는 화려한 조명에다 화사한 미소의 미인들로 눈부시다. 하지만 무대 뒤는 몸매를 조금이라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옷 속에 집어넣는 각종 보정물이 나뒹굴고 있다. 솜이나 스폰지, 헝겊 조각까지. 각종 의상 콘테스트에 나서는 미인들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뒤처리는 생각도 못한다. 무대 뒤는 그야말로 쓰레기장이었다고들 한다. 사실인지, 호사가들이 지어내고 부풀린 얘기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올해 도내에서는 벽화사업이 활발했다.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 홍보가 주 목적이다. 마산지역은 ‘가고파 꼬부랑길’, ‘오동동 소리길’, 창원은 대산면 유등리가 ‘에코마을 프로젝트’로 화려하게 재탄생했다.

    ‘가고파 꼬부랑길’은 경남은행이 사회공헌사업으로 마산합포구 성호동 일대 31가구의 외벽에 조성됐다. 452m에 걸쳐 총 50여 점의 벽화가 제작됐는데, 경남미술협회 소속 32명의 작가가 참여해 저도연륙교, 진해 경화역 벚꽃 등 창원 9경을 담은 파노라마 벽화, 골목별 특징을 살린 8개 테마별 벽화를 그렸다.

    경남은행은 인접한 문신미술관, 시립박물관, 창동예술촌 일대, 부림시장 먹자골목, 무학산 둘레길, 돝섬 등과 함께 이곳이 관광벨트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보수 작업과 편의시설 확충, 홍보 등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산의 ‘동피랑’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오동동 소리길’은 창원시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1월 완성됐다.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30여 개의 통술집의 외벽은 노랑·초록·파랑 등 원색으로 화사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일부 외벽은 마산어시장과 오동동 풍경을 그려온 고(故) 현재호 화백의 작품 30여 점으로 채워졌다. 유등리는 창원시의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의 결실. 지역 대산미술관 전문인력이 투입되고 주민들이 참여해 400m에 이르는 마을 역사를 담은 이야기 벽화를 완성했다.

    이 밖에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찾아가는 문화활동-우리마을 꾸미기사업’으로 도내 8곳에 벽화를 제작했다.

    남해군 고현면 오곡마을과 이동면 다천마을, 의령군 군청 인근,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함양군 공설운동장, 창원시 동읍 판신마을, 함안군 칠원면, 하동군 하동공원 등이다. 경남미술협회, 경남전업미술가협회, 경남불교미술인협회, 창작미술 동행회가 작업에 참여했다.

    칙칙하고 낡은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고 반길 일이다. 하지만 벽화가 완성되기까지 모든 작업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환영받으며 수월하게 진행된 곳도 있지만, 현지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작가와 제작 주관처와 이견을 보인 곳도 있었다.

    벽화 제작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귀찮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 구경꾼이 몰려오면 시끄럽기만 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가고파 꼬부랑길’ 작업에서는 주민을 설득하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경남은행이 환경정화를 위한 쓰레기봉투와 연탄·쌀 등을 지원하고, 마을공동사업 지원을 약속해 사업이 진행됐지만 영 개운치가 못하다.

    벽화작업에 참여했던 화가들의 뒷얘기도 좀 씁쓸하다. 고용창출이라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한여름에 진행됐던 작업은 힘들고도 위험했다. 여기다 수시로 바뀌는 주관처의 이런저런 요구로 작가의 자존심을 다치기도 했다고 한다.

    한 작가는 “작품성을 훼손하고 주변환경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요구해 올 때 자괴감이 밀려왔다. 전문성 없이 행정적인 잣대로만 진행되는 벽화사업은 지양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무대 뒤편의 몇 가지 잘못으로 무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향후 사업에서 무대 앞뒤 모두를 아름답게 만들 지혜를 기대할 뿐이다.

    이문재 문화체육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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