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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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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귀 기울여 듣는 게 경청(傾聽)이다- 서영훈(방송인터넷부장)

  • 기사입력 : 2014-03-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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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은 식상할 듯한 비유이지만, 아무리 들어도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경구가 있다.

    ‘입은 하나, 귀는 둘’이다. 포유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고등동물은 한 개의 입, 두 개의 눈과 귀를 갖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상대에게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이동해야 한다. 입이 하나인 이유다.

    대신 상대가 접근하고 있는지 주의깊게 보고 또 들어야 한다. 눈과 귀가 각각 둘인 까닭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톰슨가젤이나 시베리아 산악지역의 사슴은 조용히 풀을 뜯는다. 이들은 먹이활동을 하는 중에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고개를 높이 들고 귀를 쫑긋 세운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먹이가 되는 약자뿐 아니라 먹이를 찾는 강자도 마찬가지다.

    톰슨가젤과 사슴을 각각 먹잇감으로 삼는 사자와 호랑이는 사냥의 순간엔 포효하지 않는다. 몸을 수풀에 가린 채,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사냥감을 응시하며 다가갈 뿐이다.

    야생동물이 아닌 인간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많이 보고 많이 듣는 대신, 말은 적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이롭다.

    입이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이니, 듣는 것의 절반만큼 말하라고도 한다. 굳이 이런 기계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적게 말해서 손해보는 경우보다 말을 많이 하여 화를 입은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은 분명하다.

    P&G그룹을 위기에서 구한 앨런 조지 래플리는 자신을 CEO(최고경영자)에 빗댄 CLO(Chief Listening Officer) 즉 최고청취자라 칭했다. P&G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깨닫기 위해서다. 그는 CLO로서 임직원들과의 대화 중엔 항상 3분의 2 원칙을 지켰다. 대화의 3분의 2는 듣는 데 할애하고, 자신이 말하는 데는 3분의 1만 썼다고 한다.

    말을 잘하고 또 많이 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 즉 경청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다.

    경청이라면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그의 아들인 이건희 현 회장 사이에 전해지는 일화도 있다.

    이 전 회장은 아들에게 傾聽(경청)이라는 글을 붓으로 써서 선물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좌우명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전 회장은 매년 연말 일본 도쿄의 호텔에 머물면서 현지의 재계와 정계 인물들과 교류하며 이들의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경청을 중시한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경청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귀 기울여 듣는다는 말이다. 듣기는 듣되, 흘려듣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치단체 등이 각종 개발행위에 앞서 요식적으로 하는 공청회나 세미나, 일의 방향을 이미 정해 놓고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여론조사 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말이 경청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민생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유권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현장에서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예비후보들이 유권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귀담아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그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정도의 탐방이라면, 아니함만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청은 자치단체나 기업에 한정해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하위직보다는 단체장이나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고위직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 이들은 듣는 시간보다는 말하는 기회가 훨씬 많은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말을 귀 기울여 듣되, 가려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경청의 숨은 뜻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영훈 방송인터넷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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