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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문주(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4-03-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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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혜진이 아빠가 딸을 잃은 후 6년 동안 술만 마시다가 결국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늦둥이 딸을 유난히 아끼던 다정다감한 아빠였기에 딸이 죽은 그날부터 그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당시 11살이던 이혜진이와 9살 우예슬이는 2007년 크리스마스에 유괴되어 실종 77일째 되는 다음 해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납치범은 이웃집에 사는 남자였는데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후 시체를 훼손해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혜진이 아빠는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 술만 마시며 살이 15㎏이 빠져 허리가 24인치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져 이가 전부 부서지기도 했다. 그래도 해마다 추모일이 되면 혜진이가 좋아하던 음료와 케이크를 사들고 혜진이가 묻힌 곳을 찾았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모임의 회장은 작년 추모제 때, 이번이 마지막 추모제가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추모객도 별로 없고 혜진이 아빠가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삶의 희망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모임의 독거노인에게 연탄을 배달하는 봉사도 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견디지 못해 꽃 피는 3월, 혜진이 옆에 묻혔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슬픔에는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슬픔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특히 이런 사건의 경우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부모는 숨은 쉬지만 죽은 목숨이다.

    이제 혜진이 아빠의 슬픔은 끝났을까. 그런데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왜 슬퍼질까. 내 자식을 묻은 슬픔도 아닌데 그 슬픔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어느 매체에서 피해자 보호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들었다.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관련 법이 있기는 한데, 피해자보호대책위원회는 2010년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한다. 가해자를 수감하는 비용에 비해 피해자 보호기금은 턱없이 부족하며, 그나마 다 쓰이지도 않는다. 피해 당사자들이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신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혜진이 아빠의 경우 약간의 위로금을 받았고 정신치료도 몇 번 받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11년에 다섯 살 난 딸을 잃은 한 어머니를 인터뷰한 기사도 보았다. 그 어머니는 피해자 보호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으며, 딸이 죽은 후 단 한 번도 어떤 지원이나 정신적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은 분명 무관심한 사회의 탓이고 제도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슬픔을 줄이고 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개인의 불행이나 슬픔은 온전히 개인의 탓만이 아니다. 더구나 범죄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타인과 사회 때문에 아픔을 겪은 것이다. 사회에 대한 패배감과 분노로 인해 자신을 깊은 슬픔에만 가두게 되고 혜진이 아빠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피해자의 슬픔을 나누고 제대로 도와주지는 못하는 있는 현실이다.

    다섯 살 난 딸을 잃은 어머니도 우울증 치료와 같은 정신적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고 했다. 피해자 스스로가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식을 묻은 사람이 자기 살길을 찾아 노력할 정신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슬픔에 빠진 사람을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위로하고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살아 있는 건강한 사람의 도리이다. 사회 제도도 우리가 사람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측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가진 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약자 편에 서는 것이 건강한 사람의 양심이다.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는 실망과 분노를 내버려 두는 것은,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또 한 번 죽이는 것이다. 살아남은 우리들의 슬픔, 우리는 혜진이 아빠를 생각하며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문주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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