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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안이한 대응으로 놓쳐버린 '골든타임'

  • 기사입력 : 2014-05-15 16: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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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을 맞은 가운데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고의 단초가 됐던 과적과 불법증축, 평형수 부족, 무리한 출항 등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와 함께 사고 후 승무원들과 해경, 정부, 언론의 허술한 대처가 피해를 키운 정황도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안이한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승객 304명은 세월호와 함께 물에 잠겼다.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하며 놓친 책임 소재는 명확히 규명돼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 '나 먼저 도주' 선장과 승무원들
    세월호 참사에서 304명의 실종·사망자를 유발한 1차적 '주범'은 승객들을 버리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선장 이준석(69)씨를 비롯해 사고 당시 운항과 교신을 맡은 항해사, 조타수, 기관실 승무원 등은 그 책임이 더 막중하다.

       이들이 배의 이상을 감지한 것은 16일 오전 8시 49분. 세월호의 속도가 급격히 줄면서 변침(變針)을 시작한 시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6분 뒤인 오전 8시 55분 배의 이상 징후를 담당 기관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에 신고한다.

       이후 제주 VTS, 제주해경, 목포해경을 거쳐 진도 VTS가 세월호와 교신을 시작한 시각은 10분이 더 지난 9시 5분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조처에 나서야 할 선원들이 우왕좌왕하며 골든타임 '16분'을 허비했다.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승객들에게 '지금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계속했다.

       이 방송은 선박직 승무원들이 모두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전 9시 45분 이후에도 계속됐다.

       구조신고를 받고 해경 123함정이 이미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들이 도망친 줄 모르는 서비스직 승무원들은 방송을 계속 반복했다.

       세월호에서 송신된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는 오전 10시 17분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세월호는 이 '죽음의 방송'과 함께 오전 11시 18분 완전히 침몰했다.

       승객을 구해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파렴치한 도주 행각을 벌였고 이해할 수 없는 안내방송으로 탈출 가능성이 있었던 마지막 카톡 송신까지의 골든타임 '72분'을 추가로 날려 버렸다.

       선원들은 초기 신고과정과 후속 조처까지 골든타임 '16+72' 88분을 놓쳐버렸다.

       ◇ '오보 반복' 언론과 정부가 날린 골든타임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접한 국민 대부분은 우려와 함께 가슴을 졸이며 '그래도 큰 배가 쉽게 침몰하겠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이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사고 소식이 알려지고 1시간 30분가량이 지난 오전 11시 5분께 많은 언론들은 '탑승한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전했다.

       이 속보는 경기도교육청의 발표를 근거로 했고 애타는 마음으로 뉴스를 보던 가족과 국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 시간 뒤 '학생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는 여러 차례 탑승객 수와 구조자 수를 번복했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정부와 이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전달받아 보도한 언론 때문에 대책을 논의해야 할 각 부처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오전 9시 25분 사고 보고를 받고 나서도 경찰 간부후보생 졸업식 행사에 참석했다.

       강 장관은 선체가 60도까지 기운 오전 9시 40분께도 경찰교육원장과 환담을 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이후 오전 10시 30분 선체가 전복됐을 때도 강 장관은 우수 졸업생에게 상장을 시상하고 기념사진까지 촬영했다.

       강 장관이 진도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 10분께였다.

       '학생 전원 구조' 오보의 진원지인 경기도교육청도 마찬가지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는 오전 8시 10분 제주해경으로부터 단원고 수학여행단 인솔교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전해 들었다.

       교육부는 이후 1시간 반이 지난 오전 9시 25분께 처음 사고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은 시각은 오전 9시 40분께였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늑장 보고는 허술한 상황 파악의 원인이 됐고 이를 받아 쓴 언론은 오보를 연달아 전하며 '방심'을 조장했다.

       당시 제대로 된 보고와 보도가 이뤄졌다면 희생자와 실종자 수는 대폭 감소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언론의 오보와 정부의 안일한 판단이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초기 대응을 미흡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 '우왕좌왕' 보고·늑장 구조 해경
    해경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47분 뒤까지 승객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해경의 '늑장 구조'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해경은 사고 현장에 도착해 '승객을 두고 탈출한' 선원들을 구하고, 바다로 뛰어내린 승객과 선체 밖으로 몸을 내민 승객만 구조했을 뿐 선체에 진입하거나 승객 대피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123함정과 해경 헬기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30분께.

       당시 배가 60∼80도가량 기울었지만 선체 진입을 시도하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패착으로 남게 됐다.

       현장을 지휘한 김문홍 목포해경 서장이 '승객 전원 퇴선' 방송을 4차례나 지시했지만, 방송은 단 한 차례만 이뤄졌다.

       생존자 A(38)씨는 "해경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헬기 소리 때문에 배 안에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이미 너무 기울어 하늘을 향해 있는 우현 쪽으로 올라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서 "그때 밧줄만 하나 내려줬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해경의 초기 구조 작업은 미흡했고 골든타임 '47분'도 속절없이 지나갔다.

       앞서 해경의 보고 상황도 신속하지 못했다.

       목포해경은 오전 8시 54분 최초 신고자로 확인된 단원고 학생의 신고를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 '3자 통화'로부터 접수했다.

       신고를 접수할 당시 해경은 어린 학생인 신고자에게 사고 위치를 물으며 '위도와 경도가 어떻게 되느냐' 등 황당한 질문을 하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서장은 사고 발생 당시 중국 어선 단속을 위해 사고 하루 전인 15일 오전 6시 해경 3009함을 타고 출항, 신안군 홍도 남서쪽 51.8㎞ 지점에 있었다.

       서장이 자리에 없으면 경무기획과장이 서장 대행을 맡게 되고, 상황실 총괄 업무는 경비구난과장이 책임지게 돼 있다.

       우여곡절 끝에 김 서장이 최초 보고를 받은 시각은 오전 9시 3분으로 사고 발생 신고 후 약 1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해경 역시 보고와 구조 작업에서 우왕좌왕하며 골든타임 '47+10' 57분을 허비했다.

       ◇ '무사안일' 진도VTS
    세월호는 침몰하기 이전 오른쪽으로 45도가량 급격한 '변침'(變針)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선박자동 식별장치(AIS)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AIS 기록에 따르면 세월호는 오전 8시 48분 37초 갑자기 'J'자 모양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45도가량 돌아갔다.

       이 부근은 통상 선박이 10도가량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변침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관제를 맡은 진도 VTS는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선박이 항로에서 벗어나면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할 장비들도 먹통 상태였다.

       이후 세월호의 속도는 정상속도인 17노트에서 15노트(8시 49분 13초), 10노트(49분 37초), 5노트(50분 16초)로 떨어졌다.

       급격히 속도가 감소했지만 진도 VTS는 여전히 세월호의 이상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진도 VTS는 최초 신고자와 제주 VTS를 거쳐 세월호의 신고를 받은 목포해경을 통해 사고 사실을 알고 오전 9시 6분 세월호와 첫 교신을 시도했다.

       세월호가 변침한 오전 8시 48분 이후 '18분'이 지난 뒤였다.

       또 진도 VTS는 관제 해역에 선박이 들어오면 교신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관제 해역에 들어온 세월호와 확인 교신을 하지 않아 세월호 승객 수와 인원에 대한 파악도 늦었다.

       당시 교신 내용을 보면 진도 VTS의 '헬기가 1분 뒤에 도착한다'는 교신에 세월호 항해사는 '승객이 너무 많아 헬기 가지고는 안될 것 같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상황 파악과 구조 지시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배는 60도 이상 기울었고 선박직 승무원들은 배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 교신이 끝나는 오전 9시 37분 이후 진도 VTS와 세월호의 '31분'간 교신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진도 VTS는 허술한 관제로 '18+31' 49분의 골든타임을 날려버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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