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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수염- 이상권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4-07-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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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인종 때다. 당대 최고 문벌 귀족인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나이는 많지만 말단무관인 견룡대정(牽龍隊正)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사건이 있었다. 귀신을 쫓는 행사인 나례 때 정중부의 수염이 길고 멋진 것을 보고는 “무신 따위에게 저렇게 멋진 수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웃으며 태웠다는 야사가 전한다. 정중부가 가슴 깊이 원한을 키우며 무신정변을 일으킨 계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김돈중은 결국 정중부에게 죽임을 당한다.

    ▼수염이 요즘은 멋내기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권력의 상징으로, 또는 힘과 남성다움의 표현으로 자리했다. 그래서 수염을 잡아뽑는 것은 물론, 만지는 것조차 모욕행위로 간주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암몬족의 왕 하눈은 다비드 왕 사신들의 수염을 깎아 모욕을 줌으로써 이스라엘족과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귀족은 턱수염을 기르고 염색했으며 금실을 넣어 땋기도 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나 중동권 남성들은 지금도 수염을 남성의 상징으로 여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수염은 정치와 이념적으로 저항을 의미했다. 체 게바라, 호찌민, 트로츠키, 레닌, 엥겔스, 마르크스 등 사회주의 혁명지도자들의 초상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염이다. 지난해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가정보원 개혁 등을 요구하며 서울광장에서 노숙투쟁을 벌였다. 수염도 깎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회동 때도 정장은 입었지만 수염만은 ‘저항의 상징’으로 고수했다.

    ▼지난 1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위에 참석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사고 수습을 위해 두 달 넘게 진도 사고 현장에 머물던 그는 수염을 깎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진도군청 상황실 간이침대에서 자고, 김밥이나 비빔밥·국수로 끼니를 해결하며 현장 수색을 지휘했다. 찾지 못한 실종자에 대해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이 장관의 수염이 ‘낮춤’의 새 트렌드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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