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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의 시대- 이은혜(이은미술치료·기업교육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4-07-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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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라는 자전적 소설로 유명하다. 그가 꿈과 사랑, 사람들을 잃고 상실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일본의 고독한 시대상을 토로했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곪은 상처를 터트리고 새 살을 돋게 만드는 치유의 과정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동 속에 특히 물질의 가치가 사람보다 우위에 서는 기막힌 사회가 되면서 각 세대별로 다른 종류의 아픔, 즉 ‘좌절 트라우마’ ‘미완성 트라우마’ ‘혼돈 트라우마’ ‘공포 트라우마’ 등을 앓고 있고 그래서 진정한 힐링이 필요한 때라고 한다.

    트라우마는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론에서 출발된 의미이지만 지금은 개인의 심리적 외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간 정신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는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 전쟁과 재난, 성폭행과 같은 빅 트라우마로부터 개인의 삶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스몰 트라우마까지.



    심리학자 칼 융의 ‘내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가 나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누구나 트라우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의 치유가 중요한 것은 충격의 여파가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의 ‘사후성 논리’로 보면 최근 들어 경험한 실연의 아픔이 잠재된 과거의 심리적 상처와 유사할 때, 즉 나를 차버린 지금의 남자가 과거의 남자들과 비슷한 이유로 나를 차버렸을 때, 그 기억들은 현재와 똘똘 뭉쳐진 더 큰 바윗덩어리가 되어 잊혀진 상처의 흔적을 더 덧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민주항쟁 후 32년 만에 건립된 광주 트라우마 센터의 출발이 그나마 반가운 이유는 지금이라도 과거 상처를 회복시키는 공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긴 세월 동안 남편을 원망하고 살았는데 아무에게도 할 수 없던 지난 이야기를 하고 나니 비로소 모든 원망을 놓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더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내쳐진 국가폭력, 재난 피해자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경남 마산은 부마민주항쟁을 이뤄낸 민주화의 성지임에도 이 시절 국가폭력을 당했던 이들이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악몽으로 밤을 지새거나 왠지 모를 불안감에 늘 허둥거리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트라우마 센터의 건립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 결과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이 나라 지도자의 약속 실천과 함께 마산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되살리는 의미에서 우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아픔 앞에서는 말해 무엇 하랴.

    이들에게 바다는 잃어버려서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을 빼앗아 간 가혹한 트라우마의 흔적일 뿐, 더 이상 답답한 가슴을 트이게 만들어주는 추억 속의 바다가 아니란다. 그러나 육친을 잃은 아픔을 겪은 시인은 이렇게 위로한다. “솔잎 내 유독 강한 나무를 찾으니 둥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였네…나도 낯선 피를 흘리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네. /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개인적인 이유이든 사회적인 원인이든 따듯한 ‘위로’와 ‘사랑’의 처방만이 어둠을 지나 다시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숨 쉬게 할 수 있다.

    유독 상처가 많은 이 해, 인생이라는 아프고 힘든 길 위에서 트라우마의 자리에 다시 사랑이 들어설 수 있도록 더 큰 용서와 연민으로 마주해 보자.

    이은혜 이은미술치료·기업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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