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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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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잘 살라카믄 우얍니꺼?-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14-07-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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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엘리엇은 시 ‘황무지(The Waste Land)’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죽은 자들의 행렬에 비유했다. 많은 현대인이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 상태로 살고 있다는 풍자다.

    죽음 상태의 인간일수록 ‘인생 별거 있냐!’며 향락과 유흥에 빠져 산다. 예컨대 사랑과 재생산을 위한 성(性)이 아닌, 욕정만을 위한 성에 빠져 공허하게 살아간다. “고상한 삶? 뭐 말라비틀어진 거냐”고 썩소하면서….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 ‘금강경’의 시작은 너무도 평범하다. “세존께서 성안을 걸어 다니며 밥을 빌어, 그것을 드시고 발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 열반과 해탈을 위해 무슨 거창한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밥 먹고 똥 싸고 자는, 희로애락의 평범한 일상 속에 득도의 길이 있다는 거다. 하지만 대개 겉멋만 잔뜩 든 사이비 종교인, 위선적 식자층이나 도인들조차 이 평범한 일상을 부정하고 자꾸 초월을 꿈꾸라고, 구원과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현혹한다. 땀 흘리며 사는 현실을 원죄로 타락한 곳이라거나, 집착으로 허우적대는 고통의 바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녀가 성을 탐하지 않으면 인간세상은 아예 멸망할 것이요, 험한 일상에 부대끼며 돈을 벌지 않으면 삶은 어찌 가꾸며, 교회와 절에 헌금과 시주는 누가 할 것인가.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사이들의 물음에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대답했다. 너희가 서 있는 ‘지금 여기’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맛볼 천국이라는 말씀이다. 이 치열한 일상을 향해 더욱 깊이 사고하고 반성하며 개선을 거듭해 삶의 토대를 확보하라는 것이 예수와 석가의 준엄한 말씀인즉.

    묻노니 삶의 마지막에 뭐가 남을까? ‘어떻게 살았느냐’는 삶의 모습만 남는 게 아닐까. 중국 명대의 탁오 이지처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한 마리 개처럼 살았다고 진솔하게 깨닫는 순간, 드디어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됐으리라. 그러니까 지금 삶에서 오로지 남한테 이기려고 악다구니 치고, ‘쩐’만을 좇아 속물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영원히 노예로 살 것이라는 경책이다.

    의식 있는 군상에게 자주 회자되는 니체의 경구 “살아지지 않은 삶을 남겨두지 말라.” 용기를 내지 못해 미루는 일, 미래를 위해 참는 일들로 인해 우리가 현재의 삶을 얼마나 헛되게 보내고 있는가. 인생이 부박해지는 것은 일상을 일상답게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소중한 일상을 가꿔 내 삶의 행복을 누려야 하리.

    미국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의 20년에 걸친 ‘죽음(death)’이란 인기 철학강좌의 결론은 명징하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최근 잘 사는 습관 같은 후천적으로 획득한 환경·태도 등의 형질이 후손에게 유전되는 현상을 ‘후성(後成)유전(리처드 C 프랜시스. ‘계간 생물학 리뷰’ 2009)’이라 부른다. 유전자 자체(DNA 염기서열)는 변화가 없지만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에 변화가 생겨 1, 2세대 이상 유전될 수 있다. 내가 고도의 정신문화적 수준으로 잘 산다면 내 후손도 그렇게 잘 살아간다니 어찌 각고의 노력을 아니할 수 있으리.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당신, 잘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죽어라 ‘소유론적 삶(to have)’을 살 것이 아니라, 죽어라 ‘존재론적 삶(to be)’을 추구하노라면 당신부터 먼저 행복할 터이고 그런 후성유전자(epigenome) 덕분으로 대대손손 행복하지 않겠는가?

    최환호 경남은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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