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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행복한 왕자가 불행하게 울고 있다- 김동률(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언론학)

  • 기사입력 : 2014-12-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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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종강했다. 겨울방학 캠퍼스는 눈 내린 산사(山寺)처럼 적요하다. 나는 이제 동안거에 들어간다. 해마다 종강 날에는 나는 짧은 동화 ‘행복한 왕자’로 작별의 인사에 갈음한다.

    늦가을 저녁, 따뜻한 남쪽을 향하던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한다. 순간 행복한 왕자가 흘리는 눈물에 놀라게 된다. 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돼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 내어 그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왕자를 장식한 모든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제비는 남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멋진 동상이 보석이 사라진 흉측한 무쇠덩이로 변해 있자, 창피하다며 부숴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 하늘나라에서 다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줄거리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쓴 동화다.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 닥친 당시 영국사회의 이기주의, 물질주의를 비판하며 타인에 대한 사랑의 존귀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당대를 주름잡던 유미주의자이지만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활동했던 와일드는 아일랜드 출신의 다른 저명 작가인 예이츠나 버나드 쇼 등과 마찬가지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이래 빼어난 작품으로 일약 유럽의 명사가 됐다. 하지만 30대 중반 16세 연하의 옥스퍼드 대학생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요즈음 말로 성 소수자, 즉 동성애다. 당시 지배세력에 의해 외설로 단죄돼 2년 형에 처해지는 등 불행한 삶을 이어가다 190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다. 하지만 사후 약 100년 뒤인 1998년 영국 정부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그의 동상을 건립함으로써 명성을 인정받았다.

    나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무척 좋아한다. 런던에 갈 때면 와일드 동상을 찾는다. 이 불행했던 천재의 행복론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의 사라져 가는 이타주의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 개념을 창안한 석학 자크 아탈리는 초연결망 사회에서는 이타주의가 미래의 세상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행복한 왕자’를 종강의 변으로 수강생들에게 들려줄 때마다 한 세기 전 와일드가 우리에게 던져 준 타인을 위한 삶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가엾은 제비는 점점 추워졌지만, 왕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빵집 문 앞에 떨어진 부스러기빵을 쪼아 먹고 양 날개를 파닥이며 몸을 녹이려고 했다. 하지만 제비는 자기가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남은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왕자의 어깨 위로 날아 올랐다. 제비의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산타클로스를 철석같이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왕자와 제비가 몹시 그리운 한 해의 끝이다. 아듀 2014!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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