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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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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맛집을 찾아서- 윤봉한(윤봉한치과의원 원장)

  • 기사입력 : 2015-01-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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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누이가 식당을 열었다. 주택가 언저리에서 꽃이 피고 지듯 소리 소문 없이 생겨나고 또 흔적 없이 사라지는 주변의 흔한 생계형 조그만 들꽃 식당이었다.

    큰 기대가 없다고는 했지만 문을 열고 난 후 하루하루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세상이 쉽진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 누이는 속이 탔겠지만 매달 모임을 갖는 우리들로선 나름 쉽게 모일 곳이 생겨 나쁘지 않았다. 그냥 ‘이번 달은 20일. 누나식당’ 하면 끝이었다. 손님이 적으니 조용한 구석방이 늘 비어 있었고 게다가 메뉴도 마음대로였다.

    쇠고기가 먹고 싶으면 쇠고기.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 누군가 뜬금없이 닭백숙이 먹고 싶다 하는 날은 미리 전화해서 ‘우리 내일 백숙 먹을게요’하면 그만이었다. 처음부터 음식 솜씨가 좋은 누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하니 자리가 없다고 했다. 예약 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누이도 처음엔 어리둥절했다는데 며칠 뒤 한 손님에게서 인터넷 대문에 맛집으로 크게 소개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유명 블로거 누구를 모르느냐고 오히려 되묻더라는 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그렇게 붐비던 식당이 얼마 못 가고 또다시 맥없이 슬슬 바람이 빠지더니 다시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가 버렸다. 3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가해진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왔더란다. ‘괜찮으시다면 맛집으로 다시 한 번 소개해 드릴까요?’라고.

    방송을 보면 줄을 서는 맛집의 조건은 대개 비슷하다. ‘싸고 맛있다’이다. 근데 음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싸고 맛있다는 말이 실제로는 서로 모순이라는 거다. 근거는 이랬다.

    맛있는 음식의 첫 번째 조건이 좋은 재료인데 좋은 재료는 현실적으로 제 값을 주고 구할 수밖에 없고, 가격에 비해 맛있다면 몰라도 무조건 싸면서 맛이 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맛있어도 비싸다면 사람들이 몰려가 줄을 서긴 힘들 것이다.

    아직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오르지 못한 맛집이란 단어는 일상에선 아주 익숙하다. 지명을 치면 연관 검색어에 제일 먼저 붙어서 오기도 한다.

    충격적인 ‘트루맛쇼’란 영화가 아니더라도 소위 유명 맛집이란 곳을 완전히는 신뢰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손님이 넘치는 맛집은 여전히 건재하고 여행 전 맛집 인터넷 검색은 이미 국민적 일상이 되었다.

    사실 맛집만이 아니다. 의사도 그렇다. 텔레비전에 자주 보이는 의사가 실제 모두 명의가 아니란 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 오늘도 여전히 방송국 앞에 줄을 서고 그 의사들의 병원엔 환자들이 다시 줄을 서고 있다. 매일같이 방송국 앞에 줄을 서 있는 의사들이 어떻게 좋은 진료를 할 수 있을까 의심 드는 것이 상식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끔찍한 ‘신해철 사건’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최근 흉터 수술 건으로 대학병원 성형외과 의사인 친구와 상담한 일이 있다.

    “어디서 수술하면 좋을까? 누가 잘하지?”

    “그건 병원이 조금 한가한 데서 해. 그런 수술은 기본이니까 시간 여유 가지고 꼼꼼히 천천히 하는 사람이 최고야. 알면서 그래.”

    번쩍 깨우는 말이었다. 중심을 잡자. 그렇다. 자본의 세상을 바꾸는 건 조금씩 천천히 가도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다. 소비자가 왕이라는데 새해엔 왕 노릇을 제대로 해봐야겠다.

    윤봉한 윤봉한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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