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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6) 맛이 간 맛집을 소개합니다

  • 기사입력 : 2015-05-14 15: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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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 진짜 맛있네요" 지난 토요일 낮에 티비를 틀었더니 익숙한 화면이 나왔다. 연예인 장수원이 인천 차이나타운 곳곳을 다니며 음식을 먹어보는 모양이었다. 내가 틀었을 때는 돌고래 모양의 피자를 먹고 있었다. 반을 갈라 보여주니 화면에 뜨거운 김이 가득 서렸다. 돌고래 모양의 빵 안에서 불고기며 해물이며 콘치즈 같은 토핑이 쏟아질 듯 흘러나왔다.

    장수원은 '로봇 연기'로 이름을 알린 것처럼 리액션이 비교적 덤덤한 편이었다. (이점이 그나마 기존에 봐왔던 화면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었다) 그래도 필요한 멘트는 다 하고 있었다. '쫀득하고' '달콤하고' '탱탱하고' 등의 표현이 동원됐다. 맛집 프로그램은 참 오랜만에 봤는데도 친숙했다. 그 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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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설의 맛집 브로커 '임 선생님'. 아초(아귀찜+초밥), 심봤다 삼겹살(삼겹살+인삼) 등을 창조했다.>

    나는 누구보다 맛집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먹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낙이라고 생각하는지라 화면 가득 음식이 나올 때면 넋을 놓고 봤다. 지금은 흥미를 잃었다. 결정적 계기가 '트루맛쇼'였다.

    '트루맛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작진은 일산 웨스턴돔에 실제로 식당을 만들고 갓 생긴 '신생 식당'이 어떻게 '맛집'으로 변신하는지를 보여준다. 맛집의 비밀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충격과 배신감을 안긴다. 그 느낌의 정도가 뭐랄까, 이번 연말정산이나 건강보험료 정산 때와 비슷한 것 같다. '뭐 얼마 떼이긴 하겠지'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다. 실제로 떼인 금액은 핵폭탄급이었다. 체감 충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이다.
     
    식당 칼럼니스트로 소개된 전문가는 천편일률적인 맛집 프로그램의 패턴을 '지루하다'고 말한다. "항상 뻔한 패턴이 있죠.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는 것 같이. 일단 맛집을 찾아가면 주인이 한번은 촬영을 거부합니다. 몇 번 부탁하면 카메라가 주방으로 따라들어가죠. 조리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꼭 한 가지 재료는 비밀이다 뭐 그렇게 말하고요. 재료를 사러가는 과정도 찍잖아요? 새벽시장이라던가. 도매상들이 하는 말도 한결같아요. 어찌나 깐깐한지, 마음에 안 들면 안 사간다, 그런 것들이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맛집 프로그램의 백미는 역시 '먹방'에 있다. 프로그램이 다르고 메뉴가 달라도 손님들의 반응은 똑같다. 맵다는 반응을 보일 땐 목을 젖히고 입 한가득 김을 뿜어내거나 맛있다는 반응을 보일 땐 '으음~ 으흐음~'같은 신음소리를 낸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을 홀리는 주옥같은 멘트들이 등장한다. "끝내줘요" "자다가도 생각나는 맛" "먹고 나면 1년은 거뜬해요" 등. 양손 '따봉' 리액션이 세트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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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생불량으로 고발된 설렁탕집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대박집으로 소개되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맛집 프로그램의 이런 패턴은 방송사와 음식점의 합작품이다. 돈만 있으면 찾아라 맛있는TV든 생생정보통이든 입맛에 따라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고를 수 있다. 방송국은 돈을 받고 정해진 포맷에 맞춰 꼼꼼히 연출을(조작을) 해준다. 촬영 할 때 손님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대본이 주어진다. 연출자는 대사를 점검하고 직접 연기지도도 해준다. 손동작이나 표정까지 세세하게.

    대부분 거짓된 반응들이다. 뜨겁지 않은데 뜨거운 척을 하라고 지시하고 하나도 달지 않은 음식인데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멘트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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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진이 세트장으로 차린 식당과 SBS의 출연 계약서. 2분에 천만원이다. (세금은 별도래요)>

    캐비어 삼겹살 등 희한한 메뉴를 수십 개씩 개발해낸 전설의 맛집 전문 브로커는 이렇게 단언한다. "맛이 있나 없나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냄새도 안 나고 만져볼 수도 없잖아. 그냥 쇼라니까 쇼."

    문제는 그 '쇼'를 누구도 검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겹살에 캐비어를 넣어 구우면 진짜 영양만점인지, 캐비어라고 넣는 것이 진짜 캐비어인지, 진짜 조미료는 하나도 안 쓰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한 작가가 "그냥 주인이 말하는 대로 방송에 나간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충격과 공포'였다.
     
    영화는 마지막에 묻는다. 맛이란 무엇일까. '즐거움이고 삶이고 인생이다'고 말하는 전문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 '맛'을 소재로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분노할만한 일이다. 방송 윤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물론 윤리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씁쓸한 것은 포장만 약간 바뀌었을 뿐 거짓 맛집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스 셰프의 말은 두고두고 곱씹을만하다. "당신의 눈이 가장 큰 거짓말쟁이에요.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아마 나도, 당신도 좀 더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어지는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걸러낼 수 있는 비판적 기능을 탑재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것은 방송이든, 신문이든 페이스북이든 모든 미디어에 똑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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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이 세트장을 닫으면서 내건 메시지. 당신의 선택은?>

    그래도 화면 속의 현란한 '쇼'를 보고 있으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분명히 윤기가 흐르고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그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진짜로 보고 있는데 사실 그것들이 전부 가짜라는 아이러니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식탐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는 이 멘트를 떠올려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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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영화소개>
    2011년 개봉한 김재환 감독의 작품. 그해 전주국제영화제서 처음 상영된 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인칭 시점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4명의 PD가 직접 맛집 프로그램 패널을 체험하는 과정과 실제로 식당 세트장을 차린 후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3년여에 걸쳐 방대한 취재와 자료 수집 후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관람 추천 대상자: 맛집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 맛집 프로그램을 보고 식당 찾아갔다가 낭패본 적 있는 사람, 충격과 공포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

    김세정 기자 ( 편집부 )

    sj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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