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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옛 노래 속에 흐르는 인생의 고락(苦樂)- 김태경(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5-05-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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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콧노래로 흘러나오는 옛 노래, 무심결이었건만 어느새 가사를 읊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노래뿐이랴. ‘울고 넘는 박달재’, ‘섬마을 선생님’, ‘처녀 농군’, ‘개나리 처녀’ 등 숱한 옛 노래들이 생생한 음률과 함께 애창곡 목록에 줄지어 서 있다. 진심, 나는 이 옛 노래들을 좋아한다. 이 노래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잔잔한 여흥이 되어 가슴으로 스며든다.

    요양병원에서 5년이란 시간을 어르신들과 함께했다. 어르신들과 보내는 시간, 병실과 프로그램실의 카세트에서는 옛 노래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병원 행사 때도 옛 노래가 빠지지 않았는데, 신년에는 소박하지만 나름의 시상식을 갖춘 노래잔치를 열기도 했다. 노래방 기계의 반주와 호흡이 맞는 어르신도 계셨지만, 시작부터 반주와는 작별을 고한 채 노래를 부르는 어르신도 계셨다. 그럴 때는 아예 노래방 기계의 반주를 꺼버린다. 그러면 곧, 세월을 향한 애틋한 여운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생의 장면들이 마치 노래 가사에 스며있는 듯,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한 어르신이 생각난다. 그분의 애창곡은 ‘동숙의 노래’였다. 몇 해 전 어버이날 행사 때였고, 그날은 어르신과 가족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무대로 꾸며졌다. 어르신은 하나뿐인 딸과 동숙의 노래를 불렀고, 노래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왈칵 눈물을 쏟으셨다. 숱한 감정이 어르신의 가슴으로 밀려왔으리라…. 가슴을 아릿하게 하는 그 모습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무심한 세월의 흔적이 그렇게 눈물로 녹아내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어르신들이 격통의 세월과 정면으로 맞서 살아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가족’의 뿌리를 지켜내고자 했기 때문이리라. 녹록지 않은 한평생, 질펀한 삶의 길 위에서 땀과 눈물, 희생으로 일궈낸 가족의 역사. 하지만 어르신들의 삶 면면을 지켜볼 수 있었던 지난 시간, 일 년이 지나도록 부모님을 찾아오지 않는 상황들을 볼 때면 마음 한편 헛헛함이 가득했다. 숨가쁘게 달려왔건만,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도린곁에 머물게 된 어르신들이 우리 가까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효성 지극한 자식들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물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지독한 이기심과 요행을 바라는 모습에서 점점 소홀해지는 것은 또 무엇일까.

    누군가 그랬다. 인생에서의 성공은 경쟁에서 승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필요한 존재였는지에 있다고. 삶의 가치가 물질로만 평가된다면 우리 삶의 뿌리는 언젠가 썩고 단절되어 버릴 것이다. 삶이 존재하는 이유, 유한한 삶의 운명을 가진 인간이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사랑 때문이지 않나.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노래를 부를 때면 유난히 흥이 많다고 느끼게 되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어쩌면 애달픈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기에 흥으로 풀어내는 것이리라.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가만가만 테이블을 치며 박자를 맞추던 얼굴들이,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얼굴들이 어릿거린다. 지금도 그곳에는 옛 노래들이 때론 구슬프게, 때론 삶의 시름을 실어 보내며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김태경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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