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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김지율(시인)

  • 기사입력 : 2015-07-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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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월호 희생자인 고 박수현 군의 부모는 유품을 정리하다 ‘A.D.H.D 공연 20번 뛰기’가 적힌 쪽지를 발견하게 됐다. 원래 ‘A.D.H.D’는 박수현 군을 포함한 단원고 학생 5명과 타 학교 학생 3명으로 구성된 밴드인데,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소속 5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뜻을 모은 사람들이 그의 희망대로 공연을 기획하게 됐고 그 소식을 들은 많은 가수들이 동참해 지난 4월 19일을 시작으로 매달 공연을 하고 있다.

    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기울어진 배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가장 개인적인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감금됐던 그들의 모습이 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까. 분명한 것은 그 사건 이후 나는 좀 더 느려졌고 좀 더 마음의 문을 닫았고 한동안 사람들을 기피했다. ‘304’라는 숫자 앞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으니까. 다만 시간과 함께 그 고통이 무감각해질까 두려울 뿐이다. 고작 한 개인에 불과한 나는 상상 이상인 그 사태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분명한 것은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죄는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나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다. 도저히 구제받지 못할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증오로부터 슬픔이 생겨나고 그것이 강렬할 때 분노가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생생히 겪고 있으니까. 다만, 이 슬픔을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을 뿐이다.

    우리는 국가의 존재 이유와 의무에 대해 교과서에서 밑줄을 그어 가며 배웠다. 모자라는 생활비를 쪼개 세금을 꼬박꼬박 냈고, 한 번도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를 저버린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런 힘없는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꿈을 피우지 못한 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그 아이들의 공포와 비명 앞에 나는 부끄러워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뮤지션이 되고 선생님이 됐을 아이들이다. 자신의 꿈을 소중히 키우며 자랑스런 엄마와 아빠가 될 그들이다. 아이들의 빈방에는 아직도 재잘거리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어느 아이의 마지막 카톡을 그대로 옮긴다. 누나 배가 이상해/응? 먼소리여/ 쿵 소리났어… 누나 사랑해.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사랑해….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공연에서 전인권이 불렀던 로드 스튜어트의 ‘saling’의 가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항해하고 있어요/ 저 바다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려고/ 난 휘몰아치는 파도를 헤쳐가고 있어요/ … 내 말이 들리나요/ 저 멀리 어두운 밤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난 죽을 듯이 울부짖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때로는 망각이 가장 적극적인 자신의 방어능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누군가 망각을 요구하더라도 우리는 기억을 지켜야 한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으므로.

    김지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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