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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도영진(3) 외로움과 썸타는 이유

  • 기사입력 : 2015-09-22 15: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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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손끝에 닿는 차가운 물의 촉감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가을이 온 걸 또 다르게 실감하기도 한다. 장렬히 죽은 줄만 알았던 연애세포가 하나씩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외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습기자에겐 가을을 탈 시간도 썸을 탈 여자도 없다.(마음은 있다)
     
    하나씩 살아나려 애쓰던 연애세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백만 마리 쯤 팔딱팔딱 살아난 사건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있을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차 지난주 일요일 수습기자 동기와 하루 일찍 서울에 올라왔다. '우리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동기의 말에 '간단히 한잔 하자'고 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달도 알맞게 밝고 바람도 기분 좋게 시원했다. 그래서 '간단히 한 잔'은 지켜지지 않았다.
     
    입사 후 처음으로 회사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술도 우리의 의지를 한참 벗어났다. '만취'에서 조금 모자라게 마시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동기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슬쩍 곁눈질로 봤는데 '아가'였다. 눈치껏 숙소로 먼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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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산책. 나 빼고 다 연애 중인 것 같다.
    이때부터였다. 가을이 온 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 숙소에서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동기는 내가 알고 지내던 동기가 아니었다. '웅 자기야아~'에서부터 시작해 '오또케~(어떡해) 자기 보고싶어', 급기야 '잘자~ 자기 사랑해~'까지. 동기의 융단폭격 닭살 애교에 내가 무장해제 당했다. 닭살이 몇 번 돋는 동안 안타깝게도 술마저 다 깼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흐뭇해진 건 잠시.
     
    치킨집에도 양념반 후라이드반이 있고, 중국집에도 짜장반 짬뽕반이 있고, 고깃집에는 족발반 보쌈반도 있는데 내 반은 어디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기는 불룩 튀어나온 배를 까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서울 연수를 오기 전 타 언론사의 한 선배가 '수습! 너 여자친구 있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없다고 하니 '잘 됐다.'고 짧게 말했다. '왜 잘된걸까?' 마음 속으로 궁금해했는데 '여자친구 없는 게 기자 생활 시작할 때 좋다. 여자친구 없을 때 두루두루 취재원과도 많이 만나고, 운신의 폭을 많이 넓혀라.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해라'고 하셨다. 그 선배는 한창 연애 중이다.
     
    서울 연수 일주일이 지났다. 두루두루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운신의 폭은 그 어느 때보다 넓다.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있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외로움과도 썸을 타고 있다. 이 썸이 오래오래 지속되다보면 좋은 기자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거라 믿어본다.

    *다음주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습기자 연수 과정을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도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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