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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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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내실있게 거듭나야 할 남강유등축제- 김지율(시인)

  • 기사입력 : 2015-10-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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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다. 유등축제와 개천예술제가 있는 남강의 가을은 울긋불긋한 볼거리들과 추억들로 생각들이 많아진다. 7살 무렵 부모님 손을 잡고 가장행렬을 따라나서던 기억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몇 시간 미아가 된 기억까지. 그 짧은 시간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없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런저런 생각들로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학창시절 단체로 등을 만들어 남강에 띄우던 때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진주성 전투에서 7만의 민관군이 순국하였고, 그것을 위한 진혼의식과 더불어 가정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유등띄우기를 했지만, 여중생들에게 유등은 학교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고 신이 났던 건 사실이다.

    40년 넘게 이 도시에 살면서 남강과 유등을 잊은 적이 없다. 다만 그 화려함이나 국제적 명성과는 살짝 비켜나간 시시하고(?) 사소한 순간들이 나에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강 위에 떠 있는 화려하고 큰 등보다는 어린 손들이 흰 창호지로 만든 소망 등에 한 자 한 자 적은 우리들의 깨알 같은 글귀들에 더 마음이 간다거나, 대숲 사이 숨어 있는 작은 등에 더 정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사소한 것들이 좋고 그것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 혹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 순간들이 모여서 결국 다 다른 지금의 모습이라면 그것도 소중한 것이다. 유등축제가 유료화되었건, 더 화려한 명성으로 국제적인 도약을 하건 중요한 건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고 작고 사소한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료화에 따라 축제장 외곽에 캘리그라피나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펜스’가 설치됐다고 한다. 하지만 흐르는 남강 위의 유등은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촉석루와 더불어 어느 곳에서든 자유롭게 볼 수 있었기에 더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는 남강 유등의 야경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남강 변으로 운동 나온 시민들에서부터 모처럼 시간을 만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들까지, 가장 먼저 이곳에 살고 있는 그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지 싶다. 시민의식은 그런 공감대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니까. 축제의 고급화와 교통문제 그리고 유등제작연구소 설립 등의 문제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혼자 또 여럿이 흔들리는 가교를 건넌다. 유등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이 지나도 강물이 사라지지 않듯 그것도 영원할 것이다. 다만 조금 에둘러 가더라도 더 기다려주고 더 자연스럽게 스밀 수 있다면.

    전쟁 속에서 가족의 안부와 군사 기밀을 강 위에 유등을 띄워 주고받았고, 가끔씩 삶의 길을 잃고 미아가 되었을 때 자신의 소망을 적은 등에 촛불을 밝혀 남강에 띄우면 수천 수백의 붉은 등은 브랜드 이전에 우리들의 간절함이었고 작은 희망이었기에.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많은 유등 중에 나는 어린왕자 등을 좋아한다. 날마다 다른 마음으로 흔들렸던 나에게 그 어린왕자가 귀에 대고 살짝 하는 말,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여.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은 유등축제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내실 있는 축제로 거듭나길 바라며 문득, 어느 날 밤 남강 위의 유등을 보러 나설 것이다. 저녁 강물에 떠 있는 등을 보며 오늘보다 내일은 더 잘 살자고 살짝 옆구리를 건드리며 지나가는 시월의 바람이 있을 것이므로.

    김지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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