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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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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커피 한 잔 속 세상- 고증식(시인)

  • 기사입력 : 2015-10-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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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에 서 있다. 드높은 하늘과 어우러진 불붙는 단풍을 보면서 잘 물들어가는 것들에 대한 반가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반갑게 다가오는 것들 중에는 그윽한 커피향도 있다. 왠지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계절 탓에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커피를 더욱 가까이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듯 이미 우리네 일상 깊숙이 파고든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새삼 커피 속에 담긴 진한 세상사를 음미해 본다.

    얼마 전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공익광고를 보다가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의 일주일 커피 소비량이 12.2잔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이 통계 수치에 따르면 쌀밥이나 배추김치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는 얘기가 된다. 불과 몇 해 전 식사 후 입가심 삼아 마시던 커피 수준을 넘어 이제는 커피 자체를 즐기는 애호가들이 확산되면서 어엿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이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게 되면서 식당이나 사무실에 심심찮게 보이던 믹스커피나 인스턴트커피의 모습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원두커피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늘어 맛좋은 커피를 찾아 즐기는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커피를 다룰 줄 아는 바리스타라는 전문적 직업인을 양산해냈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분위기와도 맞물리면서 사람들은 심각한 취업난과 조기 실직의 돌파구로 커피전문점을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주택가 골목 곳곳에까지 대여섯 평 남짓의 작은 커피숍들이 우후죽순 문을 열고 있다.

    이제 커피는 더 이상 식사 후 덤으로 나오는 공짜 디저트가 아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의 커피 한 잔 가격은 웬만한 한 끼 식사에 맞먹을 정도로 비싸다. 그래서 요즘은 식사비와 찻값을 견주어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이 가격이 커피숍에서 일하는 시간제 점원의 한 시간 시급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손에 든 ‘커피 한 잔’이 개운치만은 않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이라니.

    원두를 생산하는 커피농장 노동자들의 경우는 또 어떤가. 가까이 커피 생산국 2위라는 베트남의 경우만 보더라도 커피 노동자의 다수는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고 겨우 1~2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하니 다른 어떤 분야의 아동 노동 착취 사례보다 심각하게 와 닿는다.

    그렇다면 커피 붐을 타고 너도나도 앞다투어 문을 연 소규모 커피숍들은 소위 ‘대박’이 났을까. 들어보면 그 대답 또한 낙관적이지 않다.

    특정 업종이 잘된다고 하면 한 집 건너 같은 업종의 점포가 생겨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예로 두서너 해 전부터 여름 간식으로만 생각했던 빙수를 내세워 사계절 내내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는 빙수카페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유사한 간판을 내건 디저트카페들이 줄지어 생겨나면서 결국 과부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커피산업 또한 전망이 밝다 싶으니 일찌감치 공룡 같은 몸집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흐름에 합세하여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영세 커피숍들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달고 쓰고 시고 짠맛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커피의 맛이라고 한다. 새끼손톱만한 한 알의 커피 원두 속에 이렇듯 오만 가지 세상이 담겨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오늘따라 커피의 쓴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새삼 많은 생각을 떠올려보게 하는 가을 저녁이다.

    고증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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