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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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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아이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명형대(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6-0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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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관념과 다르게 보는 시각은 대상을 달리 바라보고 새롭게 의미를 읽어낼 수 있게 한다.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대상은 다르게 평가되고 종내에는 그 정체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대상을 바라보고 말하는 이의 시각이 문제가 된다. 바라보는 이, 즉 주체는 대상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말해야 할까.

    먼저 대상에 대해 말하는 주체라는 것은 어떠한 존재일까. 주체는 나 아닌 다른 이와의 만남을 통해서 나를 존재하게 하므로 엄격히 나만의 독립적인 존재는 따로 없다. 따라서 나 아닌 존재, 즉 타자는 나의 존립의 근거가 된다. 나의 밖에 있는 타자는 나와 다른 존재이다. 나와 다른 모습으로 나의 밖에서 대상을 보는 타자의 시각은 그 또한 그가 주체로 존재되는 여기, 나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와 그(타자)는 상호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타자는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호홉하며 살아간다. 아이는 여기 이곳에 살지만 어른과 다르게 소통하고 어른과 다르게 행동한다. 아이는 아무런 매뉴얼도 없이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고, 어른과 다르게 랩송을 즐긴다. 이것이 어른에게는 어른의 시각으로써 강제할 수 없게 하는 한 보기가 된다. 나의 가치로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오로지 주체의 폭력이 된다. 신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세계를 바라보고 판단할 절대적 힘이란 없다.

    미래가 아이들의 세계인 것과 같이 그 미래가 나의 현재를 이룬다. 나의 시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나와 많은 다른 타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주체 중심의 세계 인식을 유연하게 하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서로가 영원한 줄다리기의 경쟁 속에 놓일 것이다. 이 말이 친일을 두둔하거나 억지스런 화해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주체의 가치로 대상에 대한 판단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친독재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전히 주관적 자신의 인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일보 설문(1960. 4. 15.)에 대한 다른 견해에 대해서도 그것을 여전히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려 한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한 사람의 글귀를 읽어보자. 이은상이 “친일파였다면, 어느 정도였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넘어가자.” 이 글은 많은 유추와 가정(假定)과 조건을 붙인 어사들(?했다하더라, ?하려면, ?했을까, ?인 것인지 모른다 등)과 함께 불확실한 논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리고는 같은 글의 끝에서는 전문과는 달리 친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은상을 평가하는 많은 논의들이 몇 가지 기정사실에다 이처럼 증명할 수 없다는 말들을 들어서 가정을 내리고 또 그 가정을 내린 말들을 엮어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명백하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의 행적과 글들을 증거로써, 어려웠던 한 시대에 가질 수 있었던 한 지식인의 ‘강한 정치’ 지향의 정치적 태도를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사유가 가능할 때에, 마산의 정체성은 시공간적으로 폭넓은 다원성을 가지게 될 것이고, 또 마산의 3·15의거 정신이 소수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진정으로 다름을 포용하는 모든 이들의 역사가 될 것이다.

    오로지 나만의 언어를 중심으로 유추하고 강제해서는 타자의 그 다름을 인식할 수 없다. 나의 언어는 나에게 길들여 있어서 유연한 아이의 사유 세계를 꽁꽁 얼게 만들고 화석화한다. 타자를,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보려는 것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 지고 만다. 세계는 변화하고 어떻든 미래의 주인이 될 아이를 부정할 수 없고 지금과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대의 시각으로 대상에 굴레를 씌울 수 없다. 물론 일천(日淺)한 노산연구가 앞으로 더 계속되고 그리고 그의 정체성이 보다 폭넓고 분명해지기를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명형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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