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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뒤에 숨은 가족- 김지율(시인)

  • 기사입력 : 2016-02-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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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 감독의 무협영화 ‘와호장룡’서 리무바이는 복수를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왜 복수를 포기하고 돌아왔느냐는 말에 그는 ‘큰 슬픔’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가 본 큰 슬픔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불쌍하게 보이는 지점이었고 그래서 시비와 싸움을 떠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영화 ‘파이 이야기’는 한 인도 소년이 태평양 가운데 작은 배에서 호랑이 한 마리와 227일간 사투를 벌이다 생존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소년은 보험 조사인에게 말한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내가 보이는 대로 믿는 것과 내가 선택해서 믿는 믿음 중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이 영화는 그것을 우리에게 질문한다.

    명절 연휴가 꽤 지났는데, 이번 명절의 후유증은 좀 오래간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집안일을 거의 맡아 하던 막내가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때 꼭 해야 할 말을 놓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자신이 몰랐던 모습이 나온다. 힘든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으로 내가 쓰고 있던 가면이나 짐들을 벗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적다. 부모와 형제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같은 유전자를 나눠가진 운명적 존재다. 그래서 가족에게 입은 상처는 타인에게 입은 상처보다 훨씬 크고 깊다.

    반대로 사랑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그래도 가족의 사랑 또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가족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의 가족이란 말이 수많은 광고 속의 환상으로 가려져 있는지 모르겠다. 혹은 뉴스에 등장하는 믿기 어려운 잔혹극의 현실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가족은 적어도 깔끔하거나 우아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아프고 힘들다. 그렇지만 가족은 가족이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믿는 믿음, 그것의 제일 처음 자리에 나는 가족을 둔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건과 경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단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곪아 터진 자리엔 또 새살이 돋는다. 사랑과 상처 두 가지 얼굴의 가족은 또한 그것의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트라우마를 가졌건 가족은 ‘큰 슬픔’의 공유자들이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숨겨야 할 때가 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뭔가를 어설프게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더 단순하고 가벼워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 차순봉이 불렀던 노래가 있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대답 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 왔네’. 결국 인연이란 말도 시작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끝냈을 때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에겐 언제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김지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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