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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굿은 Good이다- 정정헌(마산대 외래교수)

  • 기사입력 : 2016-02-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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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사회에서 이맘때면 집집마다 장을 담거나 안택굿을 한다거나 아니면 한 해 신수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이런 의식은 이월의 바람을 주재하는 풍신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1월을 신과 교감하는 시기로 정월(正月)이라 불러 매사에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려 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희망보다는 암울함으로 가득하다. 국가적으로는 악화돼 가는 남북관계와 급변하는 세계정세, 사회적으로는 불평등의 심화,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와 이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 좁게는 비극적인 가정사 등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가나 지역사회나 가정에서 신명나는 굿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러나 굿이나 굿의 연희자인 무당에 대해서 우리는 백안시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굿은 원시잔존문화 형태로 여전히 우리의 핏속에 남아 있다. 삼국시대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 일제강점기와 서구 산업물질문화와 타 종교의 유입에도 명맥이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이나 민속학, 국문학자들에게는 여전히 굿은 중요한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한(恨)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맺는 것이 아니라 맺힌 것을 푸는 것이 우리 민족성이기 때문이다. 속풀이니, 살풀이, 한풀이 등과 같은 ‘풀이관념’이 우리의 기저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을 푸는 데 굿은 매우 중요한 의식의 발현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굿도 다름 아닌 한 맺힌 영혼을 위한 해원굿이다.

    이런 해원은 국가 차원에서도 해마다 관아의 일정 거리에 여단을 설치해 불행하게 죽어 제사를 받을 수 없는 귀신들을 위로하는 여제를 지내기도 했다. 제사의 주 목적은 돌림병을 예방하는 차원이었지만, 그 원인은 불행히 죽은 원귀가 돌림병을 유발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귀신은 사람에게 붙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 위로함으로써 닥칠 불행을 미리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민가에서도 매년 중구일이면 무사귀신(無祀鬼神)들을 모아 지내는 구월제사도 이런 까닭이며, 조상굿 역시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액이 끼었을 때 무당에게 맡겨 조상신의 노여움을 풀게 하고 집안의 액을 물리치는 데 있기 때문에 동일한 한풀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사회의 조상숭배는 남자 중심의 기제사와 여자 중심의 조상굿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제사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조상은 자손에게 덕을 베푸는 긍정적인 신이라고 한다면, 무당에 의해 주도되는 조상거리에 초대되는 조상은 자손에게 벌을 내리는 부정적인 신이다. 조상이 꿈에 나타난다거나 후손에게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암시할 경우 여성이 중심이 되어 굿판을 벌인다. 조상거리에서는 어떤 조상이 올지 명확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남계 직계만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모계 쪽에서도 폭넓게 그 대상이 된다. 그중에서도 불행하게 죽은 조상들이 많음은 물론이다. 무당을 매개로 하여 이런 조상들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슬픔과 원한을 토로하기도 하며 자손을 나무라고 꾸짖고도 하면서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한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마침내는 후손과 일체감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한국의 굿은 하나같이 강자보다는 약자, 군림하는 자보다는 억압받는 자, 얻은 자보다는 뺏긴 자, 가진 자보다는 잃은 자, 승자보다는 패자, 행복한 자보다는 불행한 자, 성공한 자보다는 실패한 자들의 편에서 조화로운 세상, 세계와의 화해를 꿈꾼다. 이것이 굿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지향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이런 굿판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정헌 (마산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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