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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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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학문의 신, 최치원과 미치자네-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6-04-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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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를 ‘문화예술특별시’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한 안상수 시장이 지난달 말 일본을 방문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시장은 후쿠오카에 있는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滿宮)를 둘러본 후, 전격적으로 “최치원을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스토리텔링을 하면 월영대나 사당, 동상 등에 사시사철 기도하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도시로의 강한 지향의 표시는 좋지만 시장의 직관과 감수성이 빚어낸 정책적 발언들이 늘 옳은 것인가라는 우려도 들어 놓치기 쉬운 비교문화적인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다자이후텐만구는 고운 최치원과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 헤이안 (平安)시대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845~903)를 ‘학문의 신’으로 받드는 신사다. 미치자네는 헤이안 시대 우다 천황의 우대신으로 ‘간표의 치세(寬平の治)’라 불리는 정치적 안정기를 이끌었지만 다이고 천황 때는 정적의 참소로 다자이후로 좌천됐고 그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사후, 그의 정적의 느닷없는 죽음을 시작으로 미치자네와 관련된 사람들이 계속 급서하거나 궁중에 벼락이 떨어지는 등 재난이 잇따랐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를 원령의 저주라 여겼다. 사람들은 미치자네를 무서운 벼락신으로 인식해 천신의 하나로 삼았고 미치자네의 저주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자이후에 신사를 건립했다. 그리고 재난의 기억이 흐려지자 생전에 뛰어났던 문학성을 연관시켜 ‘학문의 신’으로 위상을 변화시켰던 것으로, 일본인의 심리 토대인 문화융합이나 변용의 한 형태인 습합(習合)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치자네가 일본 ‘학문의 신’으로 숭상받는 데는 그가 학문을 할 때, 중국 전래의 학문을 배우고 익힐지라도 일본 고유의 정신인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한 화혼한재(和魂漢才)의 정신을 지켰다는 사실에 있다. 일본 고유의 야마토정신은 훗날 일본근대화론의 구심점이 됐으며, 끝내는 일본제국주의의 근간인 ‘국체론’의 정신적 원형으로 미치자네의 사상이 변용되고 말았다는 씁쓸한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학문의 신’에 대한 역사 문화적 풍토가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와 달리 최치원은 어릴 때 당나라로 유학 가 당나라 황제가 자금어대를 하사할 정도로 그의 문장이 중국을 감동시켰던 것은 틀림없었으나 이방인으로 출세의 한계를 느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청운의 큰 뜻을 펼치려 했으나 신라는 이미 저무는 나라였고 그가 배운 선진국의 지식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의 대표시로 이름 높은 ‘가을밤 비 내리는데’를 이국땅에서 만 리 밖 고향을 그리는 시라고 가르치지만, 달리 해석하면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 경세를 펼쳐야 할 마음이 만 리 어디론가 구름처럼 떠돌고 있는 현실적 비애를 노래한 것이라고 해도 무람없다. 그래서 선진 학문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좌절감과 분노를 안고 전국을 떠돌다 끝내 사십도 안 된 나이에 가야산으로 은거해 그 이후의 행방조차 아무도 모른다. 그럴 정도로 불운과 불행을 겹쳐 살았던 인물이었기에 민간의 안타까운 연민이 청학을 타고 다니는 신선으로 화했다는 신화를 남겨 놓았을 것이다. 여기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은 학문을 하더라도 때가 맞춰 줘야 한다는 것, 자칫 잘못되면 ‘꽝’ 되기 십상이라는 점이 먼저 거론되는 게 옳을 듯하다.

    문화관광 차원에서 ‘학문의 신’이란 인물이 필요하다면 행정은 시민의 문화의 장 속에서 권력을 효과적으로 획득하고 합리적으로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형식만 빌리고 그 정신적 배경과 내용을 채우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적 샤머니즘의 귀환’ 정도로 여길 것이다. 이 땅에는 학문의 신 아니라도 입시에 관련된 기도처는 전국에 넘치고 넘치므로 좀 더 진중하게 철학,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 총체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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