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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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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인권운동가 ‘알리’- 안현주(국민연금공단 김해밀양지사장)

  • 기사입력 : 2016-06-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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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미국의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현란한 복싱 실력 외에도 걸출한 입담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었다.

    지금의 신세대로서는 잘 모르기에 “‘알리’ 가수 아녜요?” 라는 뜬금없는 소리도 듣는데,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하여간 지금도 1974년 당시의 KO왕이었던 조지 포먼과의 세기의 대결에서 상대를 녹다운시키며 챔피언 벨트를 되찾던 그의 모습은 당시 전 세계 팬들을 열광케 했었다.

    또 일본 레슬러와의 이색대결에서 누워서 로킥으로만 싸우던 이노키에게 ‘누워서 직업여성처럼 큰돈 번다’고 비아냥했던 재미있던 추억도 떠오른다. 그렇지만 알리가 복싱 실력 외에 인권운동가였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알리는 미국의 흑인차별에 온몸을 바쳐 저항했던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의 영향을 받아 ‘케시어스 클레이’였던 본명을 알리로 개명했고, ‘흑인을 대우해 주지 않는 백인의 나라 미국을 위해 싸우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로 헤비급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시합에도 출전할 수 없게 된다. 그때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잇단 피살로 미국 내 흑인들의 분노는 극에 치달았고, 덩달아 반전운동은 백인들 사이에도 거세게 일었다.

    그런 시대 흐름으로 알리는 새로운 영웅으로 부상한다. 또한 1969년 닉슨독트린으로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되고 알리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뤄짐으로써 미국 흑인과 진보진영의 영웅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은퇴 후 파킨슨병으로 고생하게 되지만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의 최종 성화 점화자로서 다시 서게 된 그는 흑인차별에 절망해 ‘강물에 버렸다’는 금메달을 다시 받으면서 전 세계인에게 인간 승리의 진한 감동을 전한다.

    일찍이 스포츠인으로서 이렇게 많은 화제와 에피소드, 감동을 전한 이는 알리 외에 누가 있을까. 이제 알리의 영면 소식을 접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며 위대한 복서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그의 영면을 빌어 본다.

    안현주 (국민연금공단 김해밀양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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