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경남시론] 20세기 마지막 여름의 첫 경험- 박한규(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기사입력 : 2016-08-10 07:00:00
  •   
  • 메인이미지

    20세기 마지막 여름이었다. 그날도 밀레니엄 버그 논란만큼이나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근을 다녀온 임원이 잔뜩 독이 오른 투우장의 소처럼 거친 콧바람을 불어 대는 통에 책상 위 서류가 날아갈 지경이었다.

    “아니 눈이 삐어도 유만부득이지! 에이 에이….”

    평소 감정 표현이 솔직한 편이지만 10여 년 이상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심상치 않다. 동료들과 서로 눈을 맞추고 갸우뚱거릴 뿐 범접해서 사연을 물어보는 것은 태풍이 좀 잦아든 이후가 좋을 성싶었다.



    첫 경험!

    이 얼마나 마음을 뒤흔드는 단어인가. 특히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단어를 입으로 되뇌면서 지긋이 눈을 감고 첫사랑으로부터 시작해 온갖 육감적이고 불량스러운 연상 수만 장을 찰나의 시간에 떠올린다.

    인생의 여로에는 수많은 첫 경험들이 이정표처럼 찍혀 있다.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그 많은 차, 사람과 높은 빌딩에 짓눌려 머리를 계속 좌우 아래위로 돌렸던 서울 나들이, 이상한 냄새와 고소한 맛 그리고 좔좔 윤기가 흐르던 다갈색의 자장면, 초등학교 4학년 때 두근거리던 가슴과 붉어지는 얼굴을 주체하지 못하며 잠깐 앉았던 그 여학생의 자리, 하늘은 휘돌고 다리는 뻣뻣해지던 언덕에서의 하얀 연기와 얼굴은 후끈거리고 순식간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면서 호기와 우울증이 반복되던 그 하얀 액체의 마술,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먹는 것 말고 입이 그렇게 훌륭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는 실성한 듯 비실비실 웃기만 했던 그 밤까지.

    하지만 첫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같이 지각을 했지만 반장에게 가해지는 회초리 소리는 분명 나의 그것보다 작았고,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날 그렇게나 큰 소리로 우시던 엄마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해 당혹스러웠고, 그녀에게서 받은 짧은 편지 한 장은 절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준 훌륭한 부교재였다. 또 아무리 팔을 뻗어도 신문의 본문 기사를 읽을 수 없는 날, 전화번호를 찾는 동안 왜 전화를 걸려고 했는지를 잊어버리는 날, 114에서 불러주는 전화번호가 공포로 느껴지는 날, 백화점 점원 아가씨가 나를 ‘아버님’이라 부르는 날. 그날도 언젠가는 오고야 만다.

    나의 분신이 태어나던 날, 처음 그가 나를 아빠라 불러 주던 날, 처음 그가 가방을 메고 등교하던 날,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나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언젠가는 그가 어떤 여자를 나에게 소개할 거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가 나를 할아버지라 부를 것이고 어쩌면 그 아이는 나로 해서 죽음이라는 실체를 처음 접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그 임원은 난생처음 어느 학생으로부터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았다. 당시 그분의 나이 만 47세. 비록 온통 백발이지만 얼굴은 동안이었는데 아마 그 학생은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았거나 아니면 그 며칠 지하철에서 졸다가 어느 어르신에게 핀잔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같은 나이에 같은 첫 경험을 했다. 한마디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그 복합적인 부정 감정은 첫 키스의 느낌보다 훨씬 강렬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인생이 반환점을 돌고 나면 뭍에 오른 지 몇 날이 지난 생선처럼 선도가 많이 떨어진 듯해도 여전히 많은 첫 경험들이 인생의 고갱이로 남아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첫 경험이 어디쯤에선가 고즈넉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사이에 마음 설레는 많은 첫 경험들도 또한 보석처럼 숨어 있지 싶다.

    박한규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