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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벌금제와 황제노역- 황미화(위드에이블 원장)

  • 기사입력 : 2016-08-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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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속도위반 범칙금이 2억6000만원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핀란드 굴지의 육가공회사를 상속받은 ‘유시 살로노야’라는 27세의 청년은 제한속도가 시속 40㎞인 지역에서 80㎞로 달리다 적발되어 17만유로(한화 2억6000만원 정도)의 범칙금을 부과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거액을 부과할 수 있었던 것은 ‘일수벌금제’ 때문이다. 즉 위반행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일수’를 정하고 위반자의 소득을 ‘일일소득’으로 환산해 ‘처벌일수’만큼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위반행위가 동일해도 위반자의 소득에 따라 범칙금도 비례한다. 동일한 위반에 대해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동일한 경제적 부담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벌금제도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는 평등한 벌금제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억대의 속도위반 범칙금 사례가 이따금씩 언론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 4월 국내 모 기업인에게 내려진 한 달간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가 500~600만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는 위반내용과 장소, 차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3만원에서 15만원 사이인 것을 감안하면 위반행위가 거의 일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운전기사에게 부여된 업무 매뉴얼에는 ‘위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가 있지만, ‘신호, 차선, 과속카메라, 버스전용 차로 무시하고 목적지 도착이 우선임’이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건당 몇 만원 단위의 과태료가 그에게는 껌값도 안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금년 2월에는 서울 도심의 근린공원 부지를 소유한 또 다른 기업인은 사유지라는 이유만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도 없이 100여 그루의 나무를 무단으로 벌목했다고 한다. 지자체 공무원과 경찰이 제지했지만 당사자는 “벌금형을 받으면 그만이니 사유지에서 나가달라”며 막무가내로 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에게 벌금액은 아무런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일수 벌금제’하에서는 이 같은 위법행위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황제노역이라는 자조적인 유행어가 있다. 지방의 어떤 위법행위자가 250여억원의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5억원의 일당으로 50여 일간의 강제노역을 통해 벌금액을 탕감하도록 판결함에 따른 것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날 무렵 서울의 모 장애인인권운동가는 집시법 위반으로 부과된 200만원의 벌금을 납부할 수 없어 5만원의 일당으로 40여 일간의 강제노역에 처해진 사례가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1급 중증장애인이었지만 강제노역의 일당을 정할 때 이를 배려한 조치는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황제노역은 꿈도 꿀 수 없는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이러한 결정을 한 판사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도 수십억원의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에 일당 수백만 원의 강제노역이 행해진 사실이 보도되고 있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황제노역에 준하는 벌금제가 잔재하고 있다.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대 국회 때 ‘일수벌금제’ 도입을 위해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여론조사기관이 성인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90% 정도 응답자가 ‘일수벌금제’ 도입을 찬성했다고 한다. 소득세와 황제노역에 누진적 요소가 반영됐다면 ‘일수벌금제’ 역시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동일한 위법행위에 대해 내려진 벌금액이 어떤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이미 처벌로서 기능과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다.

    황미화 (위드에이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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