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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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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달리기에 대한 상념- 양영석(뉴미디어부장)

  • 기사입력 : 2016-08-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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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초등학교 운동회는 온 동네 축제 한마당이었다. 운동회를 보러올 가족·이웃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몇 달간 고된 마스게임 연습을 마다하지 않았다.

    밤잠을 설치고 맞은 운동회 당일 국기봉에서 건너편 나무까지 만국기가 팔락팔락 내걸리고 반듯하게 그어진 횟가루선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눠 흰색과 청색 머리띠를 매고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박 터트리기, 2인3각 등 단체종목은 많았지만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종목은 100m 달리기 하나뿐이었다. 달리기 상품은 공책, 연필 등 학용품이었는데 당시엔 운동능력이 부족했는지 순위권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 구경 온 가족들에게 자랑하려고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려도 입상하지 못해 상품 받은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 그리 중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지금은 씁쓸한 추억이 됐지만 그때 그 시절 달리기 입상은 너무나 절실했다.

    # 희망찬 가사와 밝은 멜로디가 인상적인 ‘달리기’라는 노래가 있다. 윤상이 부른 원곡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S.E.S.가 리메이크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됐고 최근엔 러블리즈와 옥상달빛이 편곡해 불렀다. 모두 들어봤는데 곡마다 분위기나 감흥이 달랐다.

    이 노래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힘을 준다고 해서 ‘수험생 응원가’로 불리고 있지만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 자살을 암시한다는 얘기가 떠돌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작사자는 가사를 만들 때 인생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1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이 냉혹한 세계를 견뎌내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했단다.

    같은 노래라도 누가 부르고 편곡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가사도 듣는 이의 생각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게 해석된다.

    #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정지돼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하고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등속도 운동을 하는데 이를 관성의 법칙(뉴턴의 제1법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전력 질주한 달리기 선수는 결승선을 지나서도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계속 달려나가게 된다.

    삶의 무게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관성 때문에 쉽게 뭔가를 시작한다거나 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오랫동안 해왔던 익숙한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의 하나엔 자신의 에너지와 역량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관성을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가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조절할 수 없는 관성의 힘에 의해 어려움에 처하거나 불행에 빠질 수 있다. 가진 게 많아 자유스러울 것 같지만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팔다리를 힘껏 움직이다 보면 정작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게 된다. 내가 원할 때 멈출 수 있고 방향을 틀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양영석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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