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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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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비빌 언덕이 없다- 하복순(경남문화예술진흥원 사무국장)

  • 기사입력 : 2016-08-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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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 중에서 영어로 풀이하기 어려워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말이 정(情)과 한(恨)이다. 둘 다 심방 변을 그 부수로 하니, 마음과 연관된 것임은 분명한 듯하다.

    예로부터 열강에 둘러싸인 지리적·정치적 환경 탓에 환난과 질곡의 역사였고 여기에서 생겨난 고유의 정서와 감정을 굳이 ‘한’이라 한다면, 이 한을 어루만져 치유한 사랑이나 친근감이 곧 ‘정’이 아닐까.

    우리 민족은 삼한시대부터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으로 이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였으니 그 흔적을 두레, 품앗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웃끼리 5~10명이 윤번제로 어려운 일을 수행했고(품앗이), 두레라는 조직으로 모내기 등 농사일을 공동으로 했다. 이렇듯 우리는 예로부터 이웃을 도와가며 살아온 정 많은 민족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구성원들의 상호지지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사회적 관계’ 조사에서 “당신이 어려울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이웃)가 있느냐”는 질문에 셋 중 한 명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니, 이는 OECD 34개국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이며 ‘정 많은 민족’은 옛말이 됐다. 어려울 때 도움 줄 사람이 없으니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하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전통적인 공동체는 와해됐고,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나부터 살고 보자는 각자도생의 길을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개인은 군중 속에서 고립돼 가고, 첨단기기만을 만지작거리면서 외롭게 살아가는 듯해 우리들의 마음 속 빈자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부족함을 민족의 전통처럼 이웃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나를 찾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작은 언덕이 돼 주자. 부모는 자식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스승은 학생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끈질기게 버텨 낼 비빌 언덕이 돼 줄 때, 허물어져가는 공동체가 회복되면서 삶의 질이 높은 안정된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하복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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