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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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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위안부’가 우리의 할머니였다니…

중국 ‘난징 위안소 진열관’ 르포
아시아 40여곳 위안소 중 최대 규모
전쟁 잔인함과 비인간성에 몸서리

  • 기사입력 : 2016-10-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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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난징에 있는 ‘리지샹 위안소 옛터 진열관’ 밖에 세워진 ‘만삭의 위안부 동상’. 이 동상은 지난 2006년 작고한 북한의 박영심 할머니가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연합뉴스/


    “인권과 도의를 벗어난 일제 만행을 비난하도록 인민에 호소하고, 나아가 평화롭게 생존·발전하는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남동쪽에 있는 장쑤성(江蘇省) 성도인 난징(南京) 시내 바이샤취(白下區)의‘리지샹 위안소 옛터 진열관 (利濟巷 慰安所 舊址陳列館)’에 적힌 글이다.

    일본군이 1937년 난징을 점령한 후 운영한 리지샹 위안소 형태가 온전하게 남은 곳을 자료관으로 바꿔 2015년 12월 1일 개관한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을 지난 19일 찾았다.

    이곳은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시아에 세운 위안소 40여 곳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위안소 8개 건물 중 2곳에 조선여자, 3곳에 중국여자, 또 다른 2개에서 일본여자들이 거주하며 끝없이 밀려온 일본 병사들에게 능욕을 당했다.

    중국 당국이 위안부 참상을 보여주기 위해 난징대학살 추모기념관의 분관 형태로 진열관을 운영한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30만명 이상(중국 측 추정)의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런 만행 탓에 인구 800만명이 넘는 난징에는 일본인 거주자나 일본인 관광객은 물론 일본식당조차 없다.

    중국동포 관광안내인은 “난징에서는 일본인을 ‘놈’으로 부를 정도로 혐오한다”며 이곳에는 일본기업이 한 곳도 없고 일본상품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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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들이 ‘리지샹 위안소 옛터 진열관’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리지샹 위안소는 북한의 박영심 할머니(2006년 작고)가 2003년 흉가로 방치된 이곳이 위안소임을 확인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됐다.

    박 할머니는 당시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감금된 채 3년간 고통을 당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일본 병사가 군도를 휘둘렀고 다락방 고문실에서 전라로 체벌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진열관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만삭의 위안부’ 동상의 실제 모델이 바로 박 할머니다.

    할머니는 17살 때 끌려와 위안소 2호 건물 ‘19호 방’에서 고통을 받다가 중국 윈난성(雲南省)까지 끌려갔다.

    한 평 크기의 ‘19호 방’ 벽면에는 작은 화장대, 낡은 주전자, 찻잔, 거울이 있고 다른 쪽 구석에는 다다미 침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3년을 보낸 할머니의 아픔, 고통, 외로움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진열관(총 3000㎡ 규모)은 2층 규모의 건물 8개 동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6개 동이 전시관이다.

    전시관 내 1600여점의 게시물, 400여 장의 도면, 680장의 사진 등은 당시 위안부들의 참혹한 피해 상황을 생생히 보여준다.

    위안부들의 처참한 모습을 담은 자료, 일본군 위안소가 배포한 소독약, 당시 위안소에서 사용하던 위안부 검사용 의료기기 등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군에 배포됐다는 ‘돌격 앞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진 콘돔과 연고 등이 눈에 띄었다. 진열관 방문객들은 ‘아시아에서 40만명의 일본군 위안부가 고통을 받았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전쟁이 지닌 잔인함과 비인간성에 몸서리쳤다.

    진열관 한 건물 외벽을 보니 증언과 자료를 남긴 위안부 피해자 70명의 시름 깊은 흑백 얼굴 사진이 붙어 있다.

    모두 발길을 멈춘 채 영문도 모른 채 타국 땅에 끌려와 두려움 속에 산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옆 건물 1층·2층에는 나무탁자가 있고 맞은편에 일본식 이름이 적힌 나무 명패 10여 개가 걸린 방이 있는데, 군인들은 그 명패에 적힌 여성을 지목해 능욕했다고 한다.

    조선인 피해여성 관련 자료를 전시한 한 건물에는 한글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조선여성에게 준 상처는 증거가 확실하며 그 역사는 부정할 수 없다”라고 쓴 글도 보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그 건물을 나서려는데 ‘끝없이 흐르는 눈물’이라고 이름 붙은 한 할머니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글귀와 함께 티슈가 놓여 있다.

    티슈로 할머니 눈물을 닦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치 한국의 소녀상처럼 우는 할머니의 눈물은 언제 그칠까.

    진열관 한 건물 안내판에는 “(위안소는) 한국과 중국 여성들이 공동으로 피해를 겪은 곳으로,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잔혹함을 알리는 증거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라고 쓰여 있다.

    난징 사람들은 이 위안소 진열관을 통해 ‘치욕과 고통의 시간을 절대 잊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을 복기하는 듯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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