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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형님-동생 문화’가 낳은 비극- 서영훈(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6-1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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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문한 탓이겠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아는 사람’이 있으면 거의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관공서든 사기업이든, 꽤 어렵거나 복잡한 일을 처리할 때 ‘아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시보다는 농촌, 큰 조직보다는 작은 조직에서 그러한 경향이 더 강한 듯해도, 그 차이가 그리 의미 있을 정도는 아니다.

    ‘아는 사람’으로는 먼저 친인척이 떠오른다.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사돈의 팔촌도 힘이 된다.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 한때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사람, 같은 모임 회원도 ‘아는 사람’에 해당한다.

    동문이라면 더 바랄 것 없다. 그중에서도 고교 동문이 으뜸이다. 감성이 한창 발달하는 시기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배움의 길을 걸어서 그럴까. 이상할 만큼 연대의식이 강하다.

    ‘아는 사람’끼리는 서로 형님, 동생으로 호칭한다. 선배·후배보다는 형님·동생이 서로를 더 친근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나. 서로 형님·동생 하는 사람에게 정이 더 쏠리고, 일도 유리하게 처리해 주기 십상이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지금 이 사회를 온통 들쑤셔 놓은 ‘최순실 게이트’의 배경에도 형님·동생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성별이 달라지다 보니 호칭이 형님·동생에서 언니·동생으로 바뀔 뿐이다.

    서로 수십 년 동안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라고 하지만, 한 사람은 청와대라는 국가기관에 몸 담고 있는 공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인이다. 극히 사적인 일로 만나는 자리라면, 서로 언니·동생이라고 부르고 또 도움을 주고 받아도 누가 뭐라 할 일은 아니다.

    공적인 일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십 보 양보하여, 시·군·구청의 인·허가 담당 공무원이 형님·동생 하는 민원인한테 리조트 하나 만들고 도로 하나 내는 데 편의를 봐 주는 정도의 일이라면 눈 딱 감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일이 크게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를 입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결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 일을 하는 공인이 자신의 권한을 언니·동생 사이의 사인에게 넘겨 주고서는 어떠한 변명도 가능하지 않다.

    사사로운 관계가 청와대나 정부·여당이라는 공적인 의사결정기구를 장식품으로 전락시키면서, 헌정이 유린되고, 시민들은 절망에 빠지고, 나라는 위태로워졌다.

    언니·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감아 주거나 공조한 인물들은 누구인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대통령이 1988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부터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고, 여타의 ‘십상시’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통령이나 그들 서로가 ‘아는 사람’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형님·동생, 언니·동생에 의한 ‘끼리끼리 문화’가 공적인 시스템을 붕괴시켜 결국 나라 꼴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

    엊그제 제1야당의 대표가 불쑥 청와대에 영수회담을 제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하는 과정에서도 ‘형님·동생’ ‘언니·동생’ 관계가 작동했다니 참으로 난감하다.

    서영훈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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