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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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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30) 만추의 도투마리골과 폐사

붉은 단풍 춤추고 폭포 노래하는 만추의 향연

  • 기사입력 : 2016-11-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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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동이 지나고 산야에는 겨울 채비가 한창이다. 겨울이 먼저 오는 지리산 산중에도 부지런한 다람쥐는 겨울을 날 식량을 준비하고,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월동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온기 머금는 산기슭 골짝에는 아직 빛바랜 단풍잎을 매단 채 마지막 남은 힘를 쏟아 버틴다. 이도 한줌의 일렁이는 바람에 한순간 일제히 낙하할 것이다. 이런 을씨년스런 황량함이 아쉽고 왠지 정감 가는 가을의 끝자락이다. 탐방팀은 도투마리골 마지막 단풍 향연과 함께 계곡 주변의 폐사지를 찾아보기로 한다. 불무장등 능선 아래, 도투마리골과 연곡사 주변에는 폐사지와 움막터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일부, 석광대와 거무내석굴, 금강대, 오향대, 금류동암 등의 흔적을 찾아보고, 아울러 숨은 단풍명소, 피아골 지류인 도투마리골을 오르며 늦가을 지리산 정취를 느껴보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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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투마리골 전경.

    ▲하늘아래 첫 동네, 목가적인 농평마을= 탐방산행기점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농평마을이다. 해발 660m에 위치한 농평마을은 주변 일대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하늘 아래 첫 동네다. 19번 국도에서 피아골로 접어들어, 연곡사 아래에서 우측으로 불무장등 능선을 향해 가파르게 굽이굽이 돌아올라 만나는 농평마을, 첫 느낌이 아늑하고 목가적이다. 고지대에 펑퍼짐한 분지가 있고, 그 한가운데 남향으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불무장등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좌우에도 야트막한 능선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리고 개방된 남쪽으로는 피아골 하류와 섬진강을 넘어 백운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지리산 산중에서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마을’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농평마을 바로 옆, 동쪽 방향으로 당재가 보인다. 토끼봉 아래 범왕능선의 앞당재에 빗대어 뒷당재로 불리는 곳이다. 주능선의 덕평봉 자락에서 바라보면 두 당재가 똑같은 모습으로 앞뒤로 나란히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이 불무장등 능선의 당재는 하동군 화개면 의신·신흥·목통·범왕마을 등과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 일대 간 문물이 넘나들던 고개였고 당시에는 농평마을도 덩달아 번성하고 활기 넘쳤다고 한다.

    탐방팀은 농평을 출발해 마을 뒤 좌측방향, 대나무밭 사이 임도를 잠시 따르다가 산길로 접어들어 매봉재, 북암재로 향한다. 주변에는 버려진 농지며 석축이 곳곳에 보인다. 연곡사 뒤쪽으로 불무장등 남사면에는 암자와 산중마을이 곳곳에 산재해 사람의 내왕도 잦았던 모양이다. 희미한 갈림길이 여러 곳이다. 사면 허리길은 희미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매봉재를 지나고 작은 지능상에 위치한 북암재 사거리에 이른다. 아래는 연곡사 방향이고 우측 능선 오름길은 통꼭봉이나 불무장등 능선으로 향하는 길이다. 탐방팀은 직진해 지능선을 넘어 사면을 따라 진행한다. 조금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석축들이 보이는데 윗거무내 지역이다. 아마도 한때 움막이나 몇몇 산중 촌가가 위치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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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농평마을 전경.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거무내석굴= 윗거무내를 지나 잠시 사면길을 이어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석광대터를 찾기 위해서는 좌측으로 가파르게 내려서야 한다. 희미한 길 흔적을 더듬어 10여분 내려서니 우측으로 바위자락에 석축과 제법 널찍한 공터가 형성돼 있다. 한때 석광대란 암자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산죽과 잡목만 무성하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도투마리골 방향으로 10여분, 너덜길을 이어가 거무내석굴에 이른다. 이곳은 한때 구도자들의 수행처였다고 하는데, 압도하는 위용의 거대한 바위 아래 개방된 형태의 석굴이 보인다. 주변을 살펴보니 바위자락에 구들의 흔적도 보이고, 중간 중간 돌출돼 수직으로 솟은 거대한 석벽은 마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킨다. 탐방팀은 석굴의 강한 기운을 느끼며 잠시 땀을 식히다가 다음 탐방지 금강대터로 향한다. 거무내석굴 앞을 돌아 우측으로 너덜지대를 10여분 오르니 여기저기 석축이 보인다. 이곳이 금강대터로 알려져 있는데, 산재한 석축의 형태로 볼 때 암자의 규모가 꽤 컸던 모양이다. 아래위로 암자터와 석축을 돌아보고 서쪽방향으로 사면길을 이어간다. 20여분 이동해 작은 지류를 건너면 대나무 숲이 나타나는데, 그 속에 오향대터가 있다. 건물은 이미 허물어져 사라지고 폐사지 일대에는 대나무 숲이 형성돼 있다. 빼곡한 대나무 숲속에 허물어진 석축이 횡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무상한 세월 속에 한갓 인간의 흔적은 언젠가 자연으로 동화되는 이치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석축 아래 대숲을 비집어 뚫고 나와 허리길을 이어간다. 등로에는 온통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눈길을 러셀하듯 낙엽길을 걸어 이내 금류동암터에 도착한다. 이곳 역시 기와파편 몇 조각 남기고 있을 뿐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위치는 아주 좋다. 좌우로 판정골과 도투마리골이 흘러 합수되고, 발아래는 금류폭포가 청류를 쏟아내며 물보라를 치고 있다. 때마침 주변의 단풍까지 곱게 물들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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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사지 석광대터.

    ▲만추의 도투마리골과 청류 토해내는 금류폭포= 금류동암터 암벽을 내려서서 도투마리골로 접어든다. 바로 금류폭포 상단이다. 금류폭포는 도투마리골을 대표하는 명소로 주변 단풍 또한 기막힌 곳이다. 배낭을 벗어 놓고 폭포 주변을 돌아본다. 하얀 포말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는 폭포는 오색단풍과 검은 암반, 쌓안 낙엽이 서로 어울리며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 용소폭포도 돌아보고 다시 금류폭포 상단으로 올라와 늦가을 도투마리골의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본다. 청량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느껴지고 심호흡 몇 번으로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금류폭포의 망중한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도투마리골을 오른다. 특이한 이름의 도투마리골, 도투마리는 베 짤 때 쓰이는 기구로 짜진 베를 감는 실패 같은 역할을 한다. 골의 형태가 도투마리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삼도봉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불무장등 능선이 중간에서 Y자 형태로 분기되고 그 사이에 도투마리골이 형성돼 있다. 불무장등 삼거리 부근에서 발원된 도투마리골은 피아골 하류, 직전마을에서 피아골에 합수되는 짧은 골이지만 가을 정취는 이웃한 피아골보다 더 좋다는 평이다. 도투마리골 서쪽 능선은 피아골 초입의 직전마을까지 이어지고, 동쪽의 본 능선은 통꼭봉을 넘고 황장산을 지나 화개장터 부근에서 섬진강으로 스며들며 그 맥을 다하는 긴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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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도자들의 수행처로 알려진 거무내석굴.

    빛바랜 늦가을 단풍이 아직은 볼 만한 도투마리골, 늦가을 단풍이 누렇게 색이 바래긴 했지만 그래도 도투마리골은 별세계에 온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청류와 폭포, 깨끗한 반석이 즐비하고, 반석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비단처럼 깔렸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빛바랜 짙은 잎새는 더욱 은은하고 깊은 맛을 풍긴다.

    구름 속을 걷듯, 도투마리골 깊은 가을 향연에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좌우골 합수부에 이른다. 금류폭포에서 1시간 10여분 소요됐다. 본류인 좌골은 불무장등 삼거리로 향하고 우골은 불무장등 능선으로 붙게 되는데, 탐방팀은 우골을 택해 오른다. 우골로 40여분 올라, 물이 끊긴 최상류 부근에서 우측으로 급사면을 치고 올라 불무장등 능선으로 탈출한다. 해발 1050m 부근이다. 이후 부드러운 불무장등 능선을 걸어 통꼭봉을 돌아내리며 폐사지와 도투마리골 탐방산행을 마무리한다.

    글·사진= 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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